2009년 5월 2일 토요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저씨는 내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고 말했다. 그런 것은 노년의 특징이라고도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고집 말이다.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중에서...






서부는 이제 더이상 광할한 개척의 상징이 아니다.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개척으로 인해 폐허가 된 문명의 도피처 혹은 피폐한 상징일 뿐이다. 그래서 서부는 지금의 문명화된 도시에 반하는 태도를 대변한다. 아이러니하나 사실이다. 아무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이 황량한 공간에서 어떠한 범죄든, 어떠한 살인이든 아무렇지 않게 벌어질 수 있다는 건 더이상 역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안관은... 보안관은 무기력하고 나약한 늙은이일 뿐이다. 얽히고 섥힌 사건에서도 보안관은 관찰자로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도망자도, 추격자도, 갱과 해결사 그 누구도 보안관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불확실할 뿐이다.


우연히 마약거래와 관련된 돈가방을 주워들은 모스는 결국 꼬리를 잡히곤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라진 돈가방을 찾기위해 살인자 안톤시거가 모스를 쫓기 시작한다. 모스와 시거의 살인과 파괴의 추격전을 보안관 벨이 수사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마약조직에서 시거를 제거하기 위해 고용한 웰스까지 개입하지만 이 꼬일대로 꼬일 것 같은 이 추격전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타락하고 황폐해진 서부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그 이상이 없다.

그러나 이 추격적 간단한듯 보이나 묵직하다. 더불어 목숨과 가족을 저당잡히면서까지 돈가방에 집착하는 모스, 그리고 그를 쫓는 미치광이 살인마 시거의 개릭터는 강렬하기 이를데없다. 돈가방을 들고 튀는 놈과, 돈가방을 들고 튀는 놈을 쫓는 놈이 있으나, 그렇다고 그 과정이 인생역전을 위한 '희망찾아 삼만리'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쫓기고 쫓을 뿐이다. 이 둘이 벌이는 추격적은 그래서 살벌하다. 세상은 추격전이 진행되는, 살인과 폭력이 허용되는 공간으로서 어둡고 우울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세상을 보안관 벨이 설명한다. 세상은 이미 것잡을 수 없이 타락했다고, 이미 자신과 같은 늙은 보안관이 세상에 관여할 순 없다고 말이다. 아니 관여해봐야 소용없다고...


세상은 몰락했고, 우울하다. 그래서 영화속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추격 본연의 스릴러가 아닌 잔인한 세상의 단편이다. '무엇이 두려우냐' 묻는다면 그건 잔인한 살육자 '안톤 시거'가 아니라 안톤 시거를 묵인하는 세상이라 답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관객을 몰아부친다. 원작 소설이 그런 것처럼...


코맥 매카시가 간결하고 빠른 문체로 '시작'하면 곧바로 절망을 향해 돌진하는 허무한 추격적을 매력있게 풀어낸 원작소설을 코엔형제는 완벽하게 이미지화했다. 소설을 통해 이미지화된 안톤시거의 모습과 코엔형제가 만들어낸 안톤시거의 완벽한 싱크로율로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코엔형제가 만들어낸 안톤 시거를 부정할 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비에르 바르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안톤시거의 완벽한 재림. 소설을 읽은 관객이라면 그의 첫 등장에서의 반응은 이랬을 것이다. '허걱'



안톤 시거의 완벽한 재림.


2주간의 추격. 그리고 챕터마다 삽입된 보안관 벨을 나래이션. 영화는 소설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는 대신, 약간의 삭제와 변형 - 내가 확인한 장면은 대략 3장면 정도, 예를 들어 시거가 웰스를 고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조직의 보스를 살해하는 장면의 경우 원작소설에선 혼자있는 보스를 살해하지만, 영화의 경우 회계사가 그 관경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처리 -을 통해 더욱 빠른 리듬으로 변주한다.


매카시와 코엔형제.


와치맨이 원작을 경험한 이들에겐 만족을, 그렇지 못한 관객들에겐 현기증과 어지러움증을 유발시켰다면 -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 이상의 결과물이 가능할까 싶은 이유였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원작 소설을 보지 않았더라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이 가능하다. 이것이야 말로 원작자인 코맥 매카시와, 영화화한 코엔형제의 이 둘의 진짜 실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