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선수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선수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선수들 - 프롤로그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지금부터 도둑들, 아니 '선수들' 얘길 시작할까 한다. 존나 잘하고, 잘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대접도 받고, 언론의 플래쉬 세례를 독차지하고, 몸에서 광채가 나는 여친도 있는, 뭐, 그런 슈퍼스타들 말고 이런 선수들 말이다.

선수입장

메이저리그에 보스턴과 뉴욕이라는 앙숙이 있다면 한국프로야구엔 기아와 롯데라는 앙숙다운 앙숙이 있다. 보스턴과 뉴욕이 앙숙인 이유는 같은 지구여서만이 아니다. 보스턴이 민주당의 큐브와 같은 곳이라면 뉴욕은 공화당의 아크원자로 같은 곳이다.
게다가 보스턴이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넘긴 이유로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밤비노의 저주(물론 2004년에서야 첫 우승을 하면서 깨지긴 했지만)로 얽혀있는 철천지 웬수 사이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이 두 팀의 맞대결만큼 뜨거운 경기는 없다. 게다가 두 팀의 팬들만큼 극성쩌는 팬들도 없고.
 
<앙숙간의 난투극이야 말로 최고의 난투극>


기아와 롯데도 뉴욕과 보스턴 못지 않다.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이 새누리당 우세의 경상도라면, 민주당의 연고지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게다가 선동렬과 최동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라이벌 역사가 서려있는 앙숙다운 앙숙되겠다. 그런 앙숙간의 올 시즌 첫 경기. 기아의 주포 김상현이 부상으로 빠져있고, 롯데의 슈퍼타자 이대호는 롯데가 아닌 일본 오릭스의 선수였다. 하지만 스타가 빠졌다고 해서 앙숙이 베프가 될 수는 없는 법. 경기는 앙숙답게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화끈한 라이벌전의 희생양은 타자가 아니라 투수였다. 기아 선발투수 앤서니가 3이닝 5실점 강판, 롯데 선발투수 사도스키가 4와 1/3이닝 5실점 강판, 양팀의 선발이 모두 무너져 마운드에서 내려간 이후 기아가 4명의 투수, 롯데가 6명의 투수를 투입, 총 12명의 투수가 긴급 출동한 이 경기에서 롯데가 11-7로 승리하면서, 롯데는 무려 1462일만에 단독 1위 자리에 올랐다.
4월 7일부터 시작해 10월 6일(182일)에 끝난 올 시즌 정규시즌을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9년 만에 첫 단독 1위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 미션 임파서블한 게임에서 김성배는 이날 투입된 롯데의 7명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김성배가 공 10개로 2명의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온 지 며칠 뒤 한 언론은 짤막하게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이성배>



그렇다. 그는 시즌 초 그저 2차 드래프트에서 간신히 롯데에 이름을 올린 성이 '김'인지 '이'인지도 햇갈리는 이름조차 생소한, 나이 많은(31세) 선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즌 기록은 69경기에 등판 53 1/3이닝 3승 3패 14홀드 방어율 3.21로 선방했다.
올 시즌 롯데가 야심차게 영입한 연봉 3억 5천의 이승호(48 2/3이닝 방어율 3.70)보다 좋은 성적이었고, 부상으로 3경기 출장밖에 하지 못한 연봉 5억의 정대현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
게다가 S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역전승의 주인공이 되어 게임MVP에 올랐다. 연봉 1억 5천에서 5천으로 삭감되어 두산에서 롯데로, 그것도 2차에 트레이드 된, 31살 김성배의 시즌은 이렇듯 너무나 훌륭했다. 더 이상 임경완을 잡지 않았다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롯데는 게임스코어 3-2로 패배가 담긴 쓴 잔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댈 선수들. 바로 김성배와 같은 선수들이다.




'선수들'

 
'세상은 넓고 선수는 많다.'


최고라는 호칭을 얻지도, 그에 걸맞는 최고의 대우를 받지 못해도, 성공의 주변을 맴돌거나 성공의 근처에서 나자빠져도 늘 뜨거운 선수들. 때론 눈에 띄지 않아도 늘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며 땀을 흘리는 선수들. 2002년 오클랜드의 20연승(1-아래 주 참조)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종목을 불문하고 발굴, 디비고 조명하는 것이 바로 이 연재의 역사적이고 친환경적인 사명이라 하겠다.
 
 
독자들의 애정 어린 제보와 선정위원(축구의 필독, 프로레스링의 UMC, 스모의 죽지않는 돌고래, 비키니 미식축구의 춘심애비 등, 아직 본인들은 모르고 있음)들의 듣보스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종목에서 선정된 선수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헌사하고, 딴지 명예의 전당에 주저 없이 헌액함으로서 선수들의 땀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 보전해 나갈 것이다. 숭고하고 결연한 이 길, 딴지 아니믄 누가 걷고 자빠져 있겠는가.




It Ain't Over 'Til It's Over

'It Ain't Over 'Til It's Over'. '끝나기 전에 끝난 것이 아니여'란 이 말은 메이저리그 명예전당에 오른 뉴욕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다니엘, 아니 요기 베라의 명언이믄서 동시에 필자가 졸라 좋아라하는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여 – 요기 베라 with 우승반지>


요기 베라의 말처럼, 게임은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목을 불문하고 게임엔 슈퍼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는 선수(팀)가 있어야 이기는 선수(팀)가 있는 게 게임의 섭리니 어쩜 슈퍼스타에 가려진 '선수들'덕에 게임은 더 흥미진진한 걸지도 모른다. 김성배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맥주 한 캔씩 들고 경기장에서, TV 앞에서 신나게 떠들며 보는 일만 남았다. '알고보면' 스포츠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인가. 스포츠의 계절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수많은 '선수들'이 여전히 땀 흘리고 있다.

(주1) 2002년 8월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벌어진 오클랜드의 20경기 성적은 20승 무패. 20연승은 103년의 아메리칸리그의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 3게임은 모두 끝내기 승리.
특히 마지막 경기는 11-0으로 이기고 있다 11-11로 동점허용. 끝내기 홈런으로 막장드라마틱한 승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1억 2592만 달러로 연봉총액 1위(오클랜드는 4004만달러로 28위)였던 양키스와 같은 103승으로 지구 1위. 리그MVP(미구엘 테하다), 사이영상(배리 지토)을 모두 휩쓸었다. 2002년 시즌 초 꼴지였던 오클랜드는 그렇게 2002년 포스트시즌에 기적처럼 진출했다.

** 독자덜은 눈치챘을지 모르겠으나 딴지 명예의 전당엔 이미 한 선수가 헌액 되어있다. 바로 전 보스턴 레드삭스의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다.


팀 웨이크필드(기사 링크)


당시 '천번은 아파야 어른이 된다'는 훈계가 하도 어이없어 결론을 그리 맺긴 했지만 '선수들' 연재의 시작이… 맞다. 본토에서도 보기 힘든 분량의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헌사다. 이런 헌사 딴지 아니믄 어디서 디벼 보겠는가. 그러니 본문 뒤에 프롤로그가 붙는 게 뭔 경우냐고 항의들 마시라. 그것도 다 딴지니깐 가능한 것이니.


**팀 웨이크필드(MLB)에 이은 다음 헌액자는 농구나 씨름 선수일 확률이 현재까지는… 높다.


** 명예의 전당 후보들에 대한 독자덜의 다양의 제보를 기다린다. 앞서 말한 자격요건을 갖춘 '선수들'에 대한 의견이나 제보는 종목을 불문하고 ddanzitheplayer@gmail.com으로 보내주시라.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야 말로 반인권적이고 공포스런 딴지의 독촉에서 필자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참.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는 게임(스포츠) 얘기가 아니라 '사랑' 얘기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팀 웨이크필드 (선수들 ver.)

야구는…
야구는 돈도 많이 들지만, 드는 돈 만큼 위험한 경기이기도 하다. 고무를 주 재료로하는 공 하나만을 쓰는 여타의 주요 구기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나무로 만든 빠따. 코르크나 고무 등을 가죽으로 감싸 108번(108번뇌와는 아무 상관없는) 꿰맨 돌덩이 같은 공을 함께 쓴다. 어디 그뿐인가. 규칙도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다. 투수는 타자가 서있는 홈플레이트로부터 18.44미터 떨어져있는, 게다가 30cm나 높이 위치한 마운드에서(타자에게 위협감을 주기 위해) 시속 120-150km 정도의 속도로 공을 뿌린다. 어떤 선수들은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1루로 걸어나가지만(필자 이건 분명 '안 아픈 척'이라 본다) 잘못 맞았다가는 조때기도 한다.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의 이종범이 한신 투수 가와지리 데스로가 던진 120km짜리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고(한국인 선수에 대한 고의적 빈볼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홈플레이트 쪽에 무리하게 붙은 이종범의 스탠스와 스트라이크존에 가까운 공의 코스를 봐서는 고의라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미쿡에선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 처묵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시애틀의 에이쑤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뿌린 148km짜리 직구에 왼손등을 맞고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디 그뿐인가, 보호장비 없이 몸과 몸이 가장 결렬하게 홈에서 부딛히기도 하는데, 지난 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미래라 불리우던 버스터 포지는 플로리다의 포수 스캇 커즌스와 홈에서의 충돌로 다리골절에, 발목인대 세군데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흔치 않은 경우이긴 하나, 야구가 한방에 훅가는 위험한 경기라는 걸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야구라는 게…

야구는 단순하게 말하면 던지고 치는 게임이다. 그게 꽃이다. 빠따를 잡은 타자의 미덕은 정확하게 멀리 쳐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번트가 아닌 홈런에 열광한다. 김재박의 공중부양 개구리 번트 정도가 아니고서야 대개는 힘껏 멀리 날아가는 시원한 타구에 열광한다. 당연한 거다. 마찬가지로 투수의 미덕은 정확하고 빠른 공이다. 투수든, 타자든 파워의 시대에 걸맞게 튜닝되어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구속보다는 다양한 구질과 완벽한 제구를 갖춘 컨트롤의 마법사 그렉 매덕스(그 역시도 초기엔 150km짜리 설익은 패스트볼을 뿌리기도 했다) 같은 투수도 있지만 대개 빠른 공을 선호한다. 시원한 투구폼을 사랑하고, 160km(100마일)의 직구가 포수의 미트를 찢어버릴 듯 쑤시고 들어가며 내는 질퍽한 '뻑' 소릴 사랑한다. 때문에 포수 뒤의 관중석은 가급적 포수와 가깝게 설계된다. 고로 가장 비싼 자리가 된다.




<가장 핫한 파이어볼러 저스틴 벌랜더와 염문설이 난 케이트 업튼>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광속구를 뿌려대는 투수를 우린 '퐈이어 볼러'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투수 연봉 5위안에 드는 요한 산타나, CC 사바시아, 클리프 리, 저스틴 벌랜더, 로이 할러데이 모두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90마일)이상이다. 국내 최고의 우, 좌완이라 불리우는 윤석민과 류현진 역시 최고 150km이상, 평균 140km대의 직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140km 이상은 스피드 건에 찍혀줘야 직구다운 직구라 불리 운다. 거기에 볼 끝의 무브먼트까지 좋다면야 죽음인 거고.


2011년 45세의 나이로 200승을 달성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팀 웨이크필드의 직구는 평균 120km에도 미치지 못한다. 파워의 시대에 직무유기도 이런 직무유기가 없다. 그런 그가 역대 111번째, 2번째로 많은 나이에 200승을 달성했다. 6이닝 동안 5실점이라는 좋지 않은 투구내용이었지만 팀이 18점을 얻어준 탓에 선발승을 따내고야 말았다. 200승을 달성하고 며칠 뒤 시즌 마지막 등판은 뉴욕 양키스와의 어웨이 경기였다. 5회 말. 선두타자 데릭 지터가 출루, 다음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상대한 웨이크필드가 던진 마지막 공은 105km(66마일)짜리 너클볼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너클볼을 받아 쳐 출루했고, 이미 4실점한 팀 웨이크필드는 무사 1,2루 상태에서 강판되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던진 105km의 너클볼은 결국 시즌 마지막 공이 되었고, 동시에 그의 야구인생의 마지막 공이 되었다. 몇 달 뒤 그는 은퇴를 발표한다. 45세의 너클볼러는 그렇게 마운드를 떠났다.





팀 웨이크필드 #1

 
팀 웨이크 필드 Tim Wakefield


1988년. 1루수 팀 웨이크필드는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지명, 월급 700불짜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2할을 전전하는 타자에게 팀은 오랜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마이너에 합류 후 1년이 넘어가자 서서히 방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감독인 우디 하이키가 제게 왔죠. 제가 다른 1루수와 캐치볼을 하면서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본 거예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트라이크도 던질 수 있나?' 그래서 '네. 고등학교 때 투수도 했어요. 못할 것도 없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시합이 끝나고 마운드에서 조금 던져봤어요. 감독님은 아무 말 없었죠. 잠시 후 사무실로 저를 불렀는데 코치들이 앉자서 저를 평가하더군요. 영화 <열아홉 번째 남자>에 나오는 상황 같았어요.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에게 불려가는 장면 말입니다. '참 나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위에서 그렇게 결정해서 내려온 건데… 구단에서 자네가 1루를 맡는 걸 원하지 않아 투수로 변신했으면 하는 모양이야'


저는 싫었습니다. 뭐랄까. 기분이 상했어요. 이렇게 빨리 나를 포기하는 건가 싶었죠. 저는 아직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감독님은 '안 돼'라고 말하니까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보면 투수로 전향하던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좋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죠.


-다큐멘터리 '너클볼' 중 팀 웨이크필드.


 

1992년 깜짝 전향한 이 듣보 너클볼러가 거둔 성적은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였다. 2할을 전전하던 타자가 투수로 전향해,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전향하고서 방어율 2점대 초반을 찍은 것이다. 피츠버그는 이 듣보 신인 너클볼러에게 1993년 홈 개막전 선발을 맡긴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볼넷 열개), 그 해 성적은 6승 11패 5.16. 다음해 팀은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 감독인 짐 릴랜드(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는 그의 깜작 데뷔를 '괴상한 일'이라고, 그의 급작스런 몰락을 '끝난 동화'라고도 했다. 너클볼은 그런 것이었다. 완벽하게 제구 되어도 늘 의심받는, 부상, 성적부진으로 인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선택되는, 던지는 투수조차도 결국 어디에 꽂힐지 모르는 그런 구질. 최초의 너클볼러라 불리는 더치 레오나드의 너클볼 역시 '어깨부상으로 인한 퇴출'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팀 웨이크필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계약을 맺는다. 팀 웨이크필드가 팀에서 방출되자, 눈여겨보던 보스턴이 필 니크로에게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필 니크로가 '가능성이 있으니 무조건 잡으라'고 조언했다. 보스턴은 팀 웨크필드에게 선배 너클볼러인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전수 받는 조건을 포함한 마이너 오퍼를 넣었다. 팀 웨이크필드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필 니크로와 만나게 된다. 필 니크로는 1960년대를 호령한, 46세의 나이로 300승을 거둔 너클볼의 제왕이었다.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신데렐라가 다시 드레스를 고쳐 입는 순간이었다.



웨이크필드를 지켜보는 필 니크로

 
 
너클볼Knuckleball

대부분의 투수들이 구사하는 구질들의 대부분은 잡는 모양, 스핀 등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혹은 스트레이트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108개의 실밥이 그립에 따라 회전하며 다양한 형태로의 궤적를 만들어준다. 손가락 끝으로 회전을 주기 때문에서 투수들에게 손톱 관리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구질이 손과 손가락을 이용해 잡아 긁으며 던진다면, 너클볼은 '밀어' 던진다. 대부분의 구질들이 인위적으로 공의 회전을 만들어 홈플레이트까지의 다양한 궤적을 만들어내는 것과 반대로 너클볼은 공을 찍어 밀어 던져 회전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서 바람, 공기의 밀도, 습도 등의 저항에 의해 듣보스런 궤적을 만들어낸다.


최훈이 그린 너클볼에 대한 완벽한 써머리.
 

일반적인 포심패스트(직구)의 구속의 2/3의 속도로 날아오는 너클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힘을 잃으며 저항에 의해 투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 무브먼트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그건 제구와 환경이 완벽할 때 얘기다. 공에 회전이 1-2바퀴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너클볼은 타짜의 빠따에게 '어서옵쇼'하는 배팅볼이 되고 만다. 밋밋하고 느려터진, 치기 딱 좋은 배팅볼이 되는 것이다.


제왕 필 니크로도 이 마구를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 빠른 구속(좋은 어깨)을 요구하는 구질이 아니므로 누구나 입문할 수 있지만, 제어가 힘들다는 점 때문에 누구나 완성할 수 없는 구질이 된다. 제어가 되지 않음이 확인되는 '폭투'의 경우 필 니크로는 한 경기 두 자리 수 이상(10개 이상)을 11번, 전담 포수가 따로 있었던 팀 웨이크필드 역시 5번을 기록했다. 게다가 느린 구속으로 인해 도루허용이 빈번해 진다. 팀 웨이크필드는 2010년 4월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9개의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구단은 이러한 너클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팬 역시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팀 웨이크필드는 말한다. '너클볼이 내 인생과 닮았다'고…




 
팀 웨이크필드 #2

200승이라는 결과는 그가 19년 동안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방어율로만 놓고 보면 그리 화끈하지 않다. 시즌 중반에 데뷔해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를 결과를 얻은 1992년과 시즌 풀타임 27경기 16승 8패 2.95를 기록한 1995년을 제외하고 풀타임 선발로 출장하여 4.0 미만을 찍은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오가면서 19시즌을 뛴 평균방어율은 4.41(463선발 200승180패) 한때 팀 동료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경우 18시즌 평균 방어율은 2.93.(409선발 219승 100패) 비슷한 승수를 거두고 은퇴한 존 스몰츠의 경우 21시즌 평균방어율은 3.33이다.(481선발 213승 155패)


 
전성기 시절, 페트로 마르티네스


그런 팀 웨이크필드가 19시즌을 뛰는 꾸준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패전전용 중간계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모욕'을 느끼면서도 그는 팀이 요구하는 자리에 앉자 있었다. 불펜 강등에 따른 항변도, 트레이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너클볼러로 전향하지 않으면 팀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데뷔 1년차 상황을 19년 동안 반복 또 반복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극성맞은 팬으로 치면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최고라 하는 보스턴에서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팀 웨이크필드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200승을 따낸 순간보다, 펜웨이파크의 그린 몬스터를 뒤로하고 은퇴기자회견을 하는 순간보다 2003년 앙숙 뉴욕 양키스와 붙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7차전의 그 순간일지 모른다. 팀 웨이크필드는 1차전 6이닝 2실점 승리, 4차전 7이닝 1실점 승리로 시리즈 MVP로 거론되고 있었다. 게다가 팀이 8회까지 5-1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 85년 만에 밤비노(미국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을 루스의 애칭인 밤비노에 빗댄 표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8회 동점허용. 결국 연장 10회 월드시리즈 진출을 대비해 휴식을 취하던 팀 웨이크필드도 출격한다. 10회를 잘 틀어막고 맞이한 11회 말. 팀 웨이크필드는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다. 밤비노의 저주를 깰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장본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은 환호했고, 보스턴은 절망했다.



다행히 다음해인 2004년. 또다시 리그챔피언쉽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보스턴은 역사적인 리버스스윕(3게임을 진 뒤 4게임을 이겨버리는)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내셔널리그 우승팀 세인트루이스와 만난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팀 웨이크필드는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5실점 한 채 강판되었으나 불펜의 선전으로 승리. 2차전 실링의 6이닝 1실점(무자책), 3차전 마르티네스의 7이닝 무실점, 4차전 데릭 로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리즈를 스윕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챙긴다. 아마 우승을 못했더라면 그에게도, 너클볼에게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2003년 홈런의 순간(좌) – 좌절의 순간 (우)


 
2007년 보스턴은 또 한번의 우승을 경험 한다. 2009년 팀 웨이크필드는 메이저 데뷔 13년 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발된다. 하지만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2011년 마지막 시즌에 거둔 성적은 7승 8패 방어율 5.12. 3,006이닝(통산 3224.1이닝)으로 보스턴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고, 팀 최고령 승리투수(44세)가 되었으며, 단일팀(보스턴) 17년 활약이라는 투수 최장기록도 세웠다. 통산 2,000 탈삼진, 200선발승 이라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2012년까지 계약이 되어있었고, 18승이 모자란 보스턴 팀 사상 최고승인 192승(사이 영, 로저 클레멘스)에 도전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1995년 보스턴 이적 첫해 활약 (16승 8패 방어율 2.95)으로 아메리칸 리그 재기선수상을 받았고, 2010년 사회공헌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선수에게 주는 로베르토클레멘테상을 수상했다. 조직에서 외면 받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너클볼러다운 수상경력이라 할 수 있겠다. 2012년. 팀 웨이크필드는 조용히 마운드를 떠났다.






조상구

'일어나요. 빨리. 처자식 굶기고 싶지 않거든 어서 일어나서 던져요'


마동탁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다 마동탁에 친 공에 맞고 쓰러진 유성구단의 후보 투수 조상구에게 마동탁이 던진 말이다. 하지만 조상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 조상구의 볼을 마동탁은 쪼개면서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마동탁… 씹쉐이.


조상구를 눈 여겨 본 전 유성구단 감독이었던 손병호 감독은 그가 준비중인 외인구단에 그를 초청한다. 손감독이 설정한 외인구단의 입단 조건은 '박대받고, 설움받는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대받고, 설움받은 오혜성, 백두산, 최경도, 하국상, 외팔이 최관, 그리고 조상구 이렇게 여섯이 무인도로 지옥훈련을 떠난다.


지옥에서 돌아온 외인구단. 마동탁의 유성구단과 결전의 날을 앞두고 손병호감독은 선발로 조상구를 선택한다. 조상구는 경기에 앞서 아들에게 표를 건내지만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몇 해 전 마동탁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연습상대로라도 제발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애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마운드에 선 조상구. 하지만 그는 예전의 조상구가 아니었다. 9이닝 4안타 무실점 완봉승. 아들도 결국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조상구가 마동탁의 최강 유성구단에게 물 먹인 구질은 바로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체득한 '너클볼'이었다.


 
손가락을 잘라 완성한 조상구의 너클볼




찰리 허프와 손병호

너클볼러들의 유대감은 다른 투수들과는 달라 보인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도움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세를 봐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유대감을 통해 너클볼은 더치 레오나드에게서 시작되어 호이트 빌헬름(너클볼 마무리투수, 마무리 투수로 최초 명예의 전당 헌액), 필 니크로와 찰리 허프를 거쳐 팀 웨이크필드에게 전수되었다. 현재 팀 웨이크필드에 이어 R.A 디키가 너클볼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R.A 디키 역시 팀 웨이크필드에게서 이어진 자신의 너클볼에 대해 너클볼러간의 유대감에 의한 결과라 주저 없이 말한다.


'(감독은)당장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잘 못하더라도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활동중인 R.A 디키의 멘토인 찰리 허프가 한 말이다. 첫 선발 데뷔에서 완투승을 거두고도 마무리로 12년 동안 활동하고 나서야 다시 선발에 나서게 된, 그 역시도 너클볼러 였다.

 

배팅볼 투수인 조상구에게 모욕감을 주던 마동탁에게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2억짜리 선수답게 굴어. 프로 세계에선 선후배 관계도 없는 줄 알아'


 
마동탁은 팀 최고 스타였다. 아무리 감독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마동탁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왜 지랄이냐'고 말하자 손병호감독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닥쳐 씹새야'

 
손병호감독


뭔가를 이룬다는 것이 혼자서는 쉽지 않다는 것, 세상 모든 투수가 퐈이어볼러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을 보면 알 수 있다.





** 릭키 스턴, 앤 선드버그감독의 다큐멘터리 '너클볼'과 김형준기자의 기사 일부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