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9일 금요일

종편요정설 : 조중동은 붕괴하는가






겨울이다. 나는 추워 죽겠는데, 다들 덜 춥다고 그런다. 추워 죽겠는데 전기세 4.5%를 또 올렸다. 등유는 한달새 20%가 올랐다. 뉴스는 생뚱맞게 내복, 연탄 찬양을 해댄다. 뉴스 만드는 넘들한테 묻자. ‘니덜 중에 내복 겹겹이 쳐 입고 연탄 때는 놈 있으면 좀 나와 바’라고. 우리 가카, 정말 엄동설한에 국민들 얼어 죽게라도 할 모양이다. 춥다. 춥단 말이다.




96년 겨울도 씨발 춥긴 마찬가지였다. 신한국당 구캐의원덜이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했던 그해 12월 27일은 더 추웠다. 그때도 그랬다. 한쪽에서 이러다 다 죽겠다 싶어 구호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친구녀석 하나는 집회에 갔다 머리통이 터졌다. 자신이 던진 돌이 전경의 헬멧이나 방패 맞고 떨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걸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 그땐 돌을 던졌다. 그렇다고 한겨울 물대포를 쏴제끼진 않았다. 지금은 돌도 던지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는 기사의 예


96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중 하나다. 1면 전체는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만 그 어떤 비판에서도 ‘날치기’라는 비겁하고 치사한 단어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다. 날치기가 아닌 ‘기습’이다. 그리고 위의 기사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오세응 부의장이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성사시키기 위해 가족들을 모아놓고 전장을 향하는 장수마냥 비장하게 출사표를 던지고, 기사 딸린 세단 대신 아들 친구 아버지의 승용차를 이용하며, 호텔을 마다하고 5만 원짜리 장급여관을 전전하며 6일째 의사봉을 들고 악역을 해냈다는 것이다. 졸라 감동스런 날치기일지 정도 되겠다. 동아가 이 정도니 조선, 중앙은 오죽할까.


54년 11월 29일 겨울은 아마 지금보다 더 추웠을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이 벌어진 그해 겨울, 박사라 불리우는 이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할 개헌안은 재적의원의 2/3이 찬성해야 통과될 수 있었다. 그 수는 135.3333~ 그러니 136명. 그러나 찬성의원은 135명. 11월 27일 부결이 선언되었지만 이틀 후인 29일 사사오입(반올림)을 근거로 0.3333~을 없애고 135명으로 우겨 가결시켰다. 그렇다.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신한국당), 한미FTA비준안 날치기(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날치기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유구한 역사적 전통성이 있는 당인 것이다. 그럼 그날 조선은 뭐랬게.
 


민족 유일 중립언론의 사설을 보라.



27일 표결이 있던 날의 사설. 내용인 즉슨


‘우린 개헌안에 대해 애초부터 반대했삼.’
‘그렇다고 표결일인 오늘 새삼스럽게 반대하지 않을 거임’
‘이미 국민을 계몽한다거나 호소할 시기는 지나씀’
‘갈 길이거든 떳떳이 신념을 가지고 가라능’

사설이 뭐 이래. 뭔말인지 모르겠잖아. 1920년 일제의 허가로 발행되기 시작한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에 대한 비판에 대해 조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면엔 일제를 반대하는 기사도 실었음. 우린 친일만 한 게 아님’ 얘네들은 말을 꼭 이런식으로 한다. 친일을 했지만 친일만 한게 아니란다. 자랑이다 쉐꺄. 앞선 사설이 마찬가지다. 반대지만 반대하진 않는다. 아마도 조선일보나, 조선일보의 추종자들이 말하는 중립이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갑다. 그래 중립적이어서 좋겠다 씹세야.



빽뚜더쀼쳐. 11월 22일 FTA 비준안이 151명의 의로운 구캐의원들에 의해 날치기 통과됐다. 분노한 많은 이들의 거리로 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공권력은 평화로운 시위대에 물대포를 뿌려댔다.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는 물론이고 지상파까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참 유익한 조약’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난 그날 조선의 1면이 보고 싶었다. 조선닷컴에 들어가 회원가입까지 했다. PDF기사 클릭하니 돈 내랜다. 500원. 바로 Ctrl+W 실행. 클릭질 몇 번으로 찾아내고야 말았다. 23일 조선의 1면을.




작아도 느껴지는 중립언론의 풍모


쏴리. 너무 작다. 하지만 그 작은 이미지 한 컷으로도 중립언론 조선의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면 헤드라인 제목 ‘한국, 미·EU FTA 첫 아시아 국가 되다’ 거기에 달라붙는 김선동 의원의 최류탄 투척 사진. 그러니까 뭐 이런 거다. 그건 하나 인정해야 한다. 정말 잘 뽑아제낀다는 거. ‘FTA만세, 반대하는 놈 나쁜 놈’. 이런 식의 이미지 프로세싱 드럽게 잘하는 능력하나는 인정해주자고. 이번엔 중앙을 함 보자.
‘우린 졸라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어. 근데 김선동이가 지랄하는 바람에 국제적 망신을 당했지 뭐야’

조선일보만 중립언론이 아닌 게야.


퀘퀘한 최루탄 앞에서도 의연히 표결에 임하는 박근혜의 모습. 거기에 조선의 인간어뢰를 연상케하는 최루탄 살포 현황 이미지. 거기에 '김선동 최루탄 = 김두한 인분'으로 뽑아낸 제목.


조선, 중앙, 동아는 늘 이런 식으로 작동해 왔다. 그들에겐 국가간 조약의 날치기가 ‘초유의 사태’로 보이지 않는다. 손수건만으로 가리고도 충분히 쳐 앉자 표결에 임할 수 있는 극소량의 최루가루만이 초유의 사태로 보여지는 것이다.


1920년 나라를 빼앗겼을 때 조선과 동아가 그 지랄들 하고 있었고, 나라를 되찾고는 독재자에 붙어 그 지랄들 했다. 거기에 65년 재벌 회장님이 만든 언론인 중앙이 그 판에 가담하여 같이 지랄들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세상은 졸라 불공정하고, 불평등해졌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종편’의 시작을 알렸다. 하긴 그들의 낯짝은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카본이었다. 카본.
 
세상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다고 치자.
좋은 놈과 나쁜 놈은 늘 대치한다. (늘 쌈박질하는게 아니고)
이상한 놈은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을 왜곡, 이간하며 끊임없이 포지셔닝 한다.

결국 이상한놈의 자리는 늘 그렇게 보존된다.


그지랄하믄서 좋은 놈의 시대든, 나쁜 놈의 시대든지 간에 자신의 지분을 확대하고 유지해왔다. 난 그것을 언론이라 하고 싶다. 정확하겐 ’조중동’이라 하고 싶고, 현재에 맞게 ’종편’이라 하고 싶다.




조선과, 중앙, 동아는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방송으로 점뿌-업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1%도 못되는 시청률에서 전전하고 있다. 주변에서 모두 ‘불이야’ 외치고 있는데, 당사자는 모른 채 불구덩이 속을 향해 달려가는 뭐 이런 경우. 바로 종편케이스인듯 싶다.


이렇게 YTN보다 못한 시청률이 지속될 경우 그들이 취하는 지상파대비 70% 광고비는 10%나 그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상황과 명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명분과 유지(자본)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럼 종편은 신문사의 자본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될 테고, 더군다나 종편 시청율에서 보여진 개무시는 역으로 신문에 대한 병맛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 내 죽기 전에 깨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조선, 중앙, 동아 중 적어도 1~2개 정도가 나가 떨어지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잉여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대중의 무시와 금전적 손해. 그럼 쟤내들은 끝난다. 사명과 소명의식이 있을리 없잖아. 돈을 못 벌고 무시당하면 끝나는 거다. 이거 또 흥분 돋네.
 


조선, 중앙, 동아는 나라를 뺏기고 되찾는 과정에서 기득권과 진하게 결탁함으로서 엄청난 부수를 자랑하는 언론으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들과 기득권을 도모하는 세력에게 걸림돌이 된다 치면 ’좋은 놈’도 ’나쁜 놈’으로 왜곡시키길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이다.


이상한 놈이 무기력해 진다면, 좋은 놈(것)과 나쁜 놈(것)은 포지션은 명확해 질 것이고. 관중들은 좋은 놈(것)과, 나쁜 놈(것)의 구분, 피아의 식별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룰이 공정해질 테고, 반칙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쁜 놈을 착안 놈으로 인식하는 실수를 덜 범하게 될 것이며, 그로인한 상처도 덜 받게 될 것이다.


내년, 많은 전문가들이 경제불황을 말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늘 왜곡하고 증폭하며 늘 써먹었던 수법이다. 헌데 난 내년이 너무나 흥미로워질 것만 같다. 세상이 너무나 변하지 않는 이유는 게임에서 늘 지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불공정하기 때문이었는데, 종편이 무기력해지고, 그 무기력의 지금 막강한 조선, 중앙, 동아의 영향력으로 전이된다면 ‘공정’이라는 상식적 가치를 빨리 맛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언론중립을 위한 조선의 부수조작


다음 세대가 우리세대에게 요구하고 있는 건 어쩜 조선, 중앙, 동아의 몰락일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몰락은 이미 시작된 듯 하다. 1%로 안되는 시청률과 70%를 넘는 신문의 장악력 사이의 간극이 이를 증명한다.


종편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 쥐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으며 안간힘을 쓸 것이다. 신문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앞 현관에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리모콘은 우리의 손에 있다. 신문은 주도권을 잡을 저들이 패러다임을 짜 놓았지만, 방송은 다르다. 볼 게 없고, 안 보면 그만이고, 그마저도 귀찮으면 채널을 삭제해 버리면 된다. 적어도 이 판에서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어 보인다. 확실히…


난 이 이야길 하고 싶었다. 이 밤. 또다시 흥분이 돋기 시작한다. 푸흡.


마지막으로, 얼마 전 ‘연예인 A모양의 사태가 IT를 발전시킨 김대중 때문’이라 씨부린 C일보의 국장 솨모님과 논쟁이 붙었다 열통터져 나자빠질 뻔 했던 잠실사는 한 누님과 그 솨모님께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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