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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7일 일요일

성용이와 성용이.

일단 보스턴 레드삭스.

나는 아는 사람은 다아는 보빠야. 2004년 첫 취업을 준비하며 면접을 보던 날이 아마 뉴욕 양키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였을 거야. 그 유명한 3게임을 먼저지고 4게임을 내리 이겨 리버스 스윕을 달성한 바로 그 시리즈. 그때 보스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 올라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끊고 86년 만에 우승을 달성했고, 나는 취업에 성공했어. 그렇게 오랜 팬이었던 난 빠가 되었어. 어때 드라마틱 하지.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후 한번 더 우승했고, 플옵에 진출하기도, 미끄러지기도 했어. 관심 있는 분덜은 알겠지만 보스턴 레드삭스가 속해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지금 난리야 난리. 뉴욕이야 망해도 3년은 가는 유명한 부잣집이고, 템파베이의 포텐이 터진지도 벌써 몇해 전 일이야. 게다가 지난 시즌부터 볼티모어가 터지더니, 토론토도 이대로 조땔수 없다며 최근 11연승을 달렸어. 토론토가 현재 지구 꼴지인데(승률 0.488) 메이저리그 전체 지구 꼴지 중에 가장 높아.(꼴지 중의 꼴지 마이애미 승률 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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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리그 ㅎㄷㄷ지구


그런 빡 터지는 지구에 속한 보스턴이 올해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어. 오늘(7월 5일) 승리로 53승을 챙기면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로 올라선 거야. 사실 류현진의 선전보다 보스턴의 부활이 개인적으로 더욱 반가워. 여기서 주목할 건 '부활'이라는 지점이야. 작년 시즌 성적은 69승 93패. 당연 지구 꼴지. 50년 만의 일이야. 시즌 내내 팀 성적은 물론 팀내 코칭스텝과 선수들과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어. 한때 일본 프로야구의 오릭스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와 함께 팀 탓, 선수들 탓하는 감독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은 바로 바비 발렌타인.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코치로 픽업해갔던 바로 그 양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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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웨이 100주년 기념패치가 붙은 유니폼을 입고 100패를 당할뻔 했...


2012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정말 시즌 내내 개판이었어. 선수들과 감독과의 불화는 끊이지 않았고, 성적은 불화를 증명했지. 사실 보스턴 레드삭스를 맡아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들어낸 전 감독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해임되었던 이유는 2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과 어수선한 팀 분위기 때문이었어.(선수들이 락커룸에서 맥주파티를 하는 등) 보스턴 구단의 선택은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고, 일본 지바에서 선수들을 장악해 우승까지 만들어냈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었지. 하지만 예상과 달리 불화는 시즌 초반부터 시작되었고, 성적은 곧바로 곤두박질 쳤어.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발렌타인 감독은 (선수장악이 수월한, 감독의 지위가 월등한)일본에서처럼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을 잡아나가려 했는데... 이게 왠걸, 선수들은 그의 방식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품기 시작한거야. 일본선수들과 미쿡선수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렌타인 감독이 깜박한거지. 


그렇게 불안하게 시즌을 진행하던 중 팀 내 주축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케빈 유킬리스에 대해 발렌타인 감독이'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경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TV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난해버린거야. 발렌타인의 발언에 유킬리스는 '뭔 말이냐'며 불쾌해했고, 동료이자 또 다른 주축선수인 페드로이아가 '우린 유킬리스를 응원한다. 발렌타인 나빠요'라고 거들자 결국 발렌타인 감독은 유킬리스에게 찾아가 사과를 해,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불화가 잠잠해지지는 않자 구단은 발렌타인 감독을 손을 들어줬어. 유킬리스를 또 다른 양말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트레이드 시킨 거지. 그렇게 끝나지도 않았어. 흰 양말이 되어 처음으로 펜웨이파크(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을 찾은 유킬리스에게 발렌타인 감독은 '유킬리스는 내가 사과했는데도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며 환영 디스를 선사했지. 이 양반이 좀 징하긴 해.


시즌 중반, 선수들이 구단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나 구단은 일단 시즌 끝까지 발렌타인 체제를 유지시켰어. 하지만 발렌타인 감독은 시즌 말미에 '코치들이 나를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조때다'며 선수도 모자라 코치를 향해 비난의 쌍권총을 난사했지. 보스턴 구단은 발렌타인이 쌍권총을 난사한 다음날 해임을 결정했어. 시즌 93패는 1965년 100패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고, 발렌타인 감독으로는 도저히 팀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거지. 발렌타인 감독과는 2년 계약이 걸려있어 해지비용으로 250만달러를 손에 쥐어주면서까지 짜른 거야. 해임이 확정된 뒤 발렌타인의 태도는 바뀌었어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내 야구인생을 통해 통들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고 말했어. 사람들은 좀 의아해했지. 하지만 뭐 앞으로 계속 야구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나 싶어.


보스턴은 발렌타인감독을 해임하고 팀내 불화의 주축에 있던 일부 선수들도 함께 트레이드해버렸는데 그 선수들이 바로 현재 류현진과 함께 뛰고 있는 조쉬 베켓과 애드리언 곤잘래스, 칼 크로프야. 아무튼 보스턴은 선수들을 내주면서 페이롤을 살짝 낮췄고, 새로운 감독의 영입을 위해 뛰어 댕겼어. 사실 발렌타인에게 보스턴 감독직을 넘긴 월드시리즈 2회 우승의 주인공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선수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감독이기도 했어. 오죽하면 2011년에 SL.com에서 시즌 중반 선수들을 상대로 조사한 '가장 인기있는 감독' 결과에 2위에 올랐을까.

  • 1위. 조 매든(탬파베이)
  • 2위. 테리 프랑코나(현 클리블랜드)
  • 3위. 짐 릴랜드(디트로이트)
  • 4위. 마이크 소시아(에인절스)
  • 5위. 더스티 베이커(신시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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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프랑코나


발렌타인 감독과 프랑코나 감독을 태도를 비교할 수 있는 유명한 케이스가 하나 있어. 발렌타인 감독은 2012년 말, 시즌 초에 (시즌)아웃된 데이빗 오티즈를 두고 '그가 시즌 아웃 된 건 포스트시즌 진출해 실패하자 자포자기한 탓'이라며 비난했던 적이 있었는데, 2010년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경우 시즌 내내 부진했던 데이빗 오티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오티즈에 대한 믿음을 거둬들일 때가 아니다'고 했던 거, 바로 그거야. 프랑코나 그 양반 스타일이 그런 거지. 그냥 선수들을 믿고 내비 두는 거. 암튼 발렌타인이라는 홍역을 겪은 구단은 프랑코나 밑에서 투수코치를 맡았고, 프랑코나와 함께 팀을 떠나 같은 지구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감독을 맡고 있던 존 패럴을 선택하기로 했어. 선수를 장악하기 위한 발렌타인의 타입보다는 개성강한 선수들을 자유방임컨트롤하는 프랑코나 방식을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 하겠지. 보스턴은 결국 토론토와 계약이 남아있는 존 패럴 감독을 내야수 마이크 아빌레스를 줘가면서 데려왔어. 주축선수들은 변함이 없고, 몇몇 새로운 선수에 감독을 선임해왔을 뿐인데, 보스턴 레드삭스는 오늘자 리그 전체 1위가 되었어. 시즌 전 보스턴이 이렇게 잘나갈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어. 감독과 선수 몇몇의  교체가 팀 전체 분위기를 바꿔버린 거야. 현재 보스턴엔 선수를 욕하는 감독도, 감독을 욕하는 선수도 없어. 뭐 지금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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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패럴





성용이와 성용이.

지금부터는 축구선수 얘기야. 정확하게는 국가대표 감독과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얘기고,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태도와 시선에 대핸 얘기야.


얼마 전에 별로 힐링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다놓고 힐링해준다고 판을 벌리는 토크쇼에 기성용과 결혼을 발표한 한혜진 특집이 2회에 걸쳐 편성되었어. 제목은 힐링캠프지만 솔직히 덕담캠프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암튼 기성용도 출연했어.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언론에는 한혜진의 매력, 기성용의 매력, 행복한 결혼 등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라구. 뭐 뻔한거지. 헌데 며칠 지나지 않아 난리가 났어. 기성용이 이중인격자에 죽일 놈이 된 거야. 이렇게 극적인 캐릭터 변환은 아마 근래 찾아보기 힘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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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캠프



기성용의 초스피드 캐릭터전환의 과정 복기해보면 이래.

  • 기성용 한혜진과의 결혼발표로 국민 어린신랑 등극.
  • 기성용이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면 리더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림.
  • 기성용의 트윗에 대해 최강희감독에 대한 비난아니냐는 여론에 기성용 '목사님 설교 말씀'이라는 뜬금없는 대꾸시전
  •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최강희감독이 본선 진출 이후 퇴임.
  • 최강희 감독 인터뷰에서 기성용의 트윗에 대해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지. 그런 짓은 비겁해'라고 응수. 덧붙여 B형은 성취욕이 강하고, O형은 성격은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며 이란전에서 실수로 결승골을 허용한 김영권을 언급(김영권은 O형)
  • 기성용은 논란이 되자 SNS을 끊겠다고 선언
  • 윤석영이 트위터에 2002년 4강 멤버 중 박지성을 포함한 O형인 선수들을 열거하며 최강희감독의 혈액형 발언에 대해 올림
  • 축구전문기자 김현회가 최강희 감독의 대차게 까는 기성용의 서브계정 글들을 공개하며 비난.
  • 기성용 하루아침에 누님들의 사랑을 받는 어린 신랑에서 존나 싸가지 없는 이중인격자 지존에 등극.


이렇게 며칠 사이에 지킬박사가 하이드 되듯, 귀여운 기성용(어린 신랑)은 위아래도 없는 기성용(최강개차반)이 되었어.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가 나가고 난 뒤에 언론의 질타를 받기 시작한 건 윤석영이었는데 기성용의 페이스북 서브계정이 공개되면서 십자포화의 센터엔 기성용이 서게 된 거지. 축구팬들은 과거 소속팀 스완지시티에서 캐피털 원 컴 우승 당시 '어디서든 팀을 위해 희생한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 기성용의 트윗을 들어가며 '소속팀에선 희생, 국대에선 오만, 위선자는 이민이나 가버려라'며 격한 반응을 토네이도 급으로 통해내고 있다. 실로 스타트랙의 엔터프라이즈호의 타임워프만큼이 강력하고 스피디한 이미지 변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거야.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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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프! 워프!


난 현재 기성용에게 쏟아지고 있는 십자포화는 좀 오바라고 봐. 팀엔 불화가 당연히 존재해. 내가 작년 시즌 보스턴을 언급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야. 불화는 면담 등의 가벼운 조치로 풀리기도 하지만 방출이나 교체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잠잠해지기도 하지. 각기 다른 사람 여럿이 묶인 팀은 '불화가 없는 완전체'일 수 없어. 그런 게 어딨어.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있으니 불화가 없을 수 없는 거야. 요즘에 꼬맹이 나오는 드라마 '여왕의 교실'를 봐도 그렇잖아. '반'이란 팀도 결국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화 덩어리인 거야. 이성으로도 억누르지 못하는 본능이 개입하는 거지. 앞서 말한 것처럼 면담이나 노력을 통한 신뢰로 불화를 개선하는 팀은 완전체로 서서히 가고 있는 거고, 상명하복의 관계에 기초한 억제하는 방식으로 불화를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억누르는 팀은 불완전체를 향해가고 있는 거지. 불화가 없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불화가 튀어나왔다고 해서, 그 불화의 진원지가 십자포화의 타겟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언론에서는 해외 국가대표를 언급하면서 불화를 잠재워야 한다고들 해. 거스 히딩크와 에드가 다비즈, 도메네크와 아넬카등을 예로 들며 불화를 종식시키고 희생과 헌신이라는 가치에 걸 맞는 국가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를 해. 그에 붙여 선수들에게 SNS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들도 흘러나와. 졸 우끼지. 아예 문명과 차단된 전기도 안 들어가는 섬 같은데 소집해 훈련을 하지 그래. 


사람들은 당황을 한 것 같어. 일종의 배신감들을 느끼는가 봐. '아니 저렇게 착하고, 축구 잘하고, 잘생기고, 누나에게 잘하는 어린 신랑이 SNS 서브계정으로 감독을 뒤에서 씹고 지랄을 했다는 거야' 뭐 이런 거. 지금의 언론이 최초 공개한 서브계정의 글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퍼다 나르는 이유도 바로 그 흥분에 기인하는 거고... 나는 기성용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언론은 지들에게 필요한 이미지만 따다가 우리에게 공급하는 것 뿐이니깐. 어린 신랑도 기성용. 버릇없는 선수 기성용도 다 기성용이란 거지.


기성용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어쨋든 뽀롱난)서브계정을 통해 '불화'를 대하는 태도가 감독을 향한 심한 '비아냥'과 '조롱'이었다는 것이어야 해. 그 외에는 없다구.(뭐 친구공개로 설정해놓았던 페이스북에 언제고 자신의 글을 퍼다 나를지 모를 사람을 친구로 맺어놓았다는 것은 가장 큰 실수인거고...) 최강희 감독이 언론에 대구 O형을 비꼬는 듯한 인터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선수(윤석영)가 SNS를 통해 최강희감독 발언을 풍자 할 수도 있는 거야. 그게 뭐 조직을 와해하고, 국가의 명예를 실추하는 중차대한 삽질이 아니라는 거야. 이 사태를 통해 사람들은 차기 감독인 홍명보감독에게 보스턴 구단이 바비 발렌타인에게 기대했던 것을 그대로 기대하는 것 같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장악'해라는 것이겠지. 결과는 둘 중에 하나일 거야. 바비 발렌타인 처럼 조때거나, 아님 벅 쇼월터(볼티모어 감독, 대표적인 독재스탈)처럼 뭔가를 보여주거나...


불화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골이 깊어졌다면 그건 일방의 잘못이 아님을 뜻해. 보스턴이 발렌타인 감독과 선수 일부를 함께 내보낸 것도 그 때문이야. 96년 히딩크가 다비즈를 국대에서 내쫓은 뒤(유로1996 8강) 98년 다시 불러 더 좋은 성적(1998 월드컵 4강)을 거둔 케이스가 시사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기도 하고... 기성용으로 붉어진 바로 그 문제도 나는 이미 팀 내부에선 오래 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고 봐. 그리고 그 불화는 언제든 팀 전체가 현명하게 극복하고 개선하면 돼. 난 개인적으로 발렌타인 식의 '억누르는'식의 지도자를 반대하지만 뭐 그런 축구협회 아니 홍명보 감독이 선택할 문제니깐.


홍명보.JPG 
홍. 명. 보


그러니 이제 십자포화는 좀 중단하자고. 기성용이 국가대표라는 조직에 불화만 일으키기고 조직과 팀웍에 해를 가하는 선수라면 앞으로 착출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그걸 뭐 비공개로 해놓은 글들을 퍼다 나르고, 그걸 가지고십자포화까지 쏴재끼면서 고민하고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선수라면 손을 내밀면 되는 거고... 뭐 개인적으로는 이참에 감독과 선수간의 완벽한 상명하복관계(물론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가 좀 개선되었으면 해. 올해 존 패럴를 중심으로 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리빌딩과 같은 의미인 거지. 그리고 '나라를 대표한다'는 뭐 그런 수식어로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 등을 강요하거나 완벽함을 기대하지 말자고, 프로선수에겐 때론 나라보다 당장 눈앞에 다가와있는 FA가 더 중요하기도 하니깐 말야. 정치인들이 마치 나(국민)를 위해 뭔가 막 해 줄 것 같은 '빠심'같은 기대를 버리면 정치도 눈에 들어오듯, 국대를 향한 심한 가치이입을 좀 배제하면 아마 더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몰라.


뭐. 아님 말고...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선수들 - 프롤로그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지금부터 도둑들, 아니 '선수들' 얘길 시작할까 한다. 존나 잘하고, 잘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대접도 받고, 언론의 플래쉬 세례를 독차지하고, 몸에서 광채가 나는 여친도 있는, 뭐, 그런 슈퍼스타들 말고 이런 선수들 말이다.

선수입장

메이저리그에 보스턴과 뉴욕이라는 앙숙이 있다면 한국프로야구엔 기아와 롯데라는 앙숙다운 앙숙이 있다. 보스턴과 뉴욕이 앙숙인 이유는 같은 지구여서만이 아니다. 보스턴이 민주당의 큐브와 같은 곳이라면 뉴욕은 공화당의 아크원자로 같은 곳이다.
게다가 보스턴이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넘긴 이유로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밤비노의 저주(물론 2004년에서야 첫 우승을 하면서 깨지긴 했지만)로 얽혀있는 철천지 웬수 사이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이 두 팀의 맞대결만큼 뜨거운 경기는 없다. 게다가 두 팀의 팬들만큼 극성쩌는 팬들도 없고.
 
<앙숙간의 난투극이야 말로 최고의 난투극>


기아와 롯데도 뉴욕과 보스턴 못지 않다.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이 새누리당 우세의 경상도라면, 민주당의 연고지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게다가 선동렬과 최동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라이벌 역사가 서려있는 앙숙다운 앙숙되겠다. 그런 앙숙간의 올 시즌 첫 경기. 기아의 주포 김상현이 부상으로 빠져있고, 롯데의 슈퍼타자 이대호는 롯데가 아닌 일본 오릭스의 선수였다. 하지만 스타가 빠졌다고 해서 앙숙이 베프가 될 수는 없는 법. 경기는 앙숙답게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화끈한 라이벌전의 희생양은 타자가 아니라 투수였다. 기아 선발투수 앤서니가 3이닝 5실점 강판, 롯데 선발투수 사도스키가 4와 1/3이닝 5실점 강판, 양팀의 선발이 모두 무너져 마운드에서 내려간 이후 기아가 4명의 투수, 롯데가 6명의 투수를 투입, 총 12명의 투수가 긴급 출동한 이 경기에서 롯데가 11-7로 승리하면서, 롯데는 무려 1462일만에 단독 1위 자리에 올랐다.
4월 7일부터 시작해 10월 6일(182일)에 끝난 올 시즌 정규시즌을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9년 만에 첫 단독 1위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 미션 임파서블한 게임에서 김성배는 이날 투입된 롯데의 7명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김성배가 공 10개로 2명의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온 지 며칠 뒤 한 언론은 짤막하게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이성배>



그렇다. 그는 시즌 초 그저 2차 드래프트에서 간신히 롯데에 이름을 올린 성이 '김'인지 '이'인지도 햇갈리는 이름조차 생소한, 나이 많은(31세) 선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즌 기록은 69경기에 등판 53 1/3이닝 3승 3패 14홀드 방어율 3.21로 선방했다.
올 시즌 롯데가 야심차게 영입한 연봉 3억 5천의 이승호(48 2/3이닝 방어율 3.70)보다 좋은 성적이었고, 부상으로 3경기 출장밖에 하지 못한 연봉 5억의 정대현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
게다가 S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역전승의 주인공이 되어 게임MVP에 올랐다. 연봉 1억 5천에서 5천으로 삭감되어 두산에서 롯데로, 그것도 2차에 트레이드 된, 31살 김성배의 시즌은 이렇듯 너무나 훌륭했다. 더 이상 임경완을 잡지 않았다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롯데는 게임스코어 3-2로 패배가 담긴 쓴 잔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댈 선수들. 바로 김성배와 같은 선수들이다.




'선수들'

 
'세상은 넓고 선수는 많다.'


최고라는 호칭을 얻지도, 그에 걸맞는 최고의 대우를 받지 못해도, 성공의 주변을 맴돌거나 성공의 근처에서 나자빠져도 늘 뜨거운 선수들. 때론 눈에 띄지 않아도 늘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며 땀을 흘리는 선수들. 2002년 오클랜드의 20연승(1-아래 주 참조)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종목을 불문하고 발굴, 디비고 조명하는 것이 바로 이 연재의 역사적이고 친환경적인 사명이라 하겠다.
 
 
독자들의 애정 어린 제보와 선정위원(축구의 필독, 프로레스링의 UMC, 스모의 죽지않는 돌고래, 비키니 미식축구의 춘심애비 등, 아직 본인들은 모르고 있음)들의 듣보스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종목에서 선정된 선수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헌사하고, 딴지 명예의 전당에 주저 없이 헌액함으로서 선수들의 땀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 보전해 나갈 것이다. 숭고하고 결연한 이 길, 딴지 아니믄 누가 걷고 자빠져 있겠는가.




It Ain't Over 'Til It's Over

'It Ain't Over 'Til It's Over'. '끝나기 전에 끝난 것이 아니여'란 이 말은 메이저리그 명예전당에 오른 뉴욕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다니엘, 아니 요기 베라의 명언이믄서 동시에 필자가 졸라 좋아라하는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여 – 요기 베라 with 우승반지>


요기 베라의 말처럼, 게임은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목을 불문하고 게임엔 슈퍼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는 선수(팀)가 있어야 이기는 선수(팀)가 있는 게 게임의 섭리니 어쩜 슈퍼스타에 가려진 '선수들'덕에 게임은 더 흥미진진한 걸지도 모른다. 김성배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맥주 한 캔씩 들고 경기장에서, TV 앞에서 신나게 떠들며 보는 일만 남았다. '알고보면' 스포츠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인가. 스포츠의 계절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수많은 '선수들'이 여전히 땀 흘리고 있다.

(주1) 2002년 8월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벌어진 오클랜드의 20경기 성적은 20승 무패. 20연승은 103년의 아메리칸리그의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 3게임은 모두 끝내기 승리.
특히 마지막 경기는 11-0으로 이기고 있다 11-11로 동점허용. 끝내기 홈런으로 막장드라마틱한 승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1억 2592만 달러로 연봉총액 1위(오클랜드는 4004만달러로 28위)였던 양키스와 같은 103승으로 지구 1위. 리그MVP(미구엘 테하다), 사이영상(배리 지토)을 모두 휩쓸었다. 2002년 시즌 초 꼴지였던 오클랜드는 그렇게 2002년 포스트시즌에 기적처럼 진출했다.

** 독자덜은 눈치챘을지 모르겠으나 딴지 명예의 전당엔 이미 한 선수가 헌액 되어있다. 바로 전 보스턴 레드삭스의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다.


팀 웨이크필드(기사 링크)


당시 '천번은 아파야 어른이 된다'는 훈계가 하도 어이없어 결론을 그리 맺긴 했지만 '선수들' 연재의 시작이… 맞다. 본토에서도 보기 힘든 분량의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헌사다. 이런 헌사 딴지 아니믄 어디서 디벼 보겠는가. 그러니 본문 뒤에 프롤로그가 붙는 게 뭔 경우냐고 항의들 마시라. 그것도 다 딴지니깐 가능한 것이니.


**팀 웨이크필드(MLB)에 이은 다음 헌액자는 농구나 씨름 선수일 확률이 현재까지는… 높다.


** 명예의 전당 후보들에 대한 독자덜의 다양의 제보를 기다린다. 앞서 말한 자격요건을 갖춘 '선수들'에 대한 의견이나 제보는 종목을 불문하고 ddanzitheplayer@gmail.com으로 보내주시라.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야 말로 반인권적이고 공포스런 딴지의 독촉에서 필자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참.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는 게임(스포츠) 얘기가 아니라 '사랑' 얘기다.
 

2012년 9월 3일 월요일

김난도에게 드리는 너클볼

 



야구는…

야구는 돈도 많이 들지만, 드는 돈 만큼 위험한 경기이기도 하다. 고무를 주 재료로하는 공 하나만을 쓰는 여타의 주요 구기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나무로 만든 빠따. 코르크나 고무 등을 가죽으로 감싸 108번(108번뇌와는 아무 상관없는) 꿰맨 돌덩이 같은 공을 함께 쓴다. 어디 그뿐인가. 규칙도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다. 투수는 타자가 서있는 홈플레이트로부터 18.44미터 떨어져있는, 게다가 30cm나 높이 위치한 마운드에서(타자에게 위협감을 주기 위해) 시속 120-150km 정도의 속도로 공을 뿌린다. 어떤 선수들은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1루로 걸어나가지만(필자 이건 분명 '안 아픈 척'이라 본다) 잘못 맞았다가는 조때기도 한다.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의 이종범이 한신 투수 가와지리 데스로가 던진 120km짜리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고(한국인 선수에 대한 고의적 빈볼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홈플레이트 쪽에 무리하게 붙은 이종범의 스탠스와 스트라이크존에 가까운 공의 코스를 봐서는 고의라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미쿡에선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 처묵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시애틀의 에이쑤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뿌린 148km짜리 직구에 왼손등을 맞고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디 그뿐인가, 보호장비 없이 몸과 몸이 가장 결렬하게 홈에서 부딛히기도 하는데, 지난 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미래라 불리우던 버스터 포지는 플로리다의 포수 스캇 커즌스와 홈에서의 충돌로 다리골절에, 발목인대 세군데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흔치 않은 경우이긴 하나, 야구가 한방에 훅가는 위험한 경기라는 걸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야구라는 게…

야구는 단순하게 말하면 던지고 치는 게임이다. 그게 꽃이다. 빠따를 잡은 타자의 미덕은 정확하게 멀리 쳐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번트가 아닌 홈런에 열광한다. 김재박의 공중부양 개구리 번트 정도가 아니고서야 대개는 힘껏 멀리 날아가는 시원한 타구에 열광한다. 당연한 거다. 마찬가지로 투수의 미덕은 정확하고 빠른 공이다. 투수든, 타자든 파워의 시대에 걸맞게 튜닝되어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구속보다는 다양한 구질과 완벽한 제구를 갖춘 컨트롤의 마법사 그렉 매덕스(그 역시도 초기엔 150km짜리 설익은 패스트볼을 뿌리기도 했다) 같은 투수도 있지만 대개 빠른 공을 선호한다. 시원한 투구폼을 사랑하고, 160km(100마일)의 직구가 포수의 미트를 찢어버릴 듯 쑤시고 들어가며 내는 질퍽한 '뻑' 소릴 사랑한다. 때문에 포수 뒤의 관중석은 가급적 포수와 가깝게 설계된다. 고로 가장 비싼 자리가 된다.



<가장 핫한 파이어볼러 저스틴 벌랜더와 염문설이 난 케이트 업튼>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광속구를 뿌려대는 투수를 우린 '퐈이어 볼러'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투수 연봉 5위안에 드는 요한 산타나, CC 사바시아, 클리프 리, 저스틴 벌랜더, 로이 할러데이 모두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90마일)이상이다. 국내 최고의 우, 좌완이라 불리우는 윤석민과 류현진 역시 최고 150km이상, 평균 140km대의 직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140km 이상은 스피드 건에 찍혀줘야 직구다운 직구라 불리 운다. 거기에 볼 끝의 무브먼트까지 좋다면야 죽음인 거고.



2011년 45세의 나이로 200승을 달성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팀 웨이크필드의 직구는 평균 120km에도 미치지 못한다. 파워의 시대에 직무유기도 이런 직무유기가 없다. 그런 그가 역대 111번째, 2번째로 많은 나이에 200승을 달성했다. 6이닝 동안 5실점이라는 좋지 않은 투구내용이었지만 팀이 18점을 얻어준 탓에 선발승을 따내고야 말았다. 200승을 달성하고 며칠 뒤 시즌 마지막 등판은 뉴욕 양키스와의 어웨이 경기였다. 5회 말. 선두타자 데릭 지터가 출루, 다음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상대한 웨이크필드가 던진 마지막 공은 105km(66마일)짜리 너클볼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너클볼을 받아 쳐 출루했고, 이미 4실점한 팀 웨이크필드는 무사 1,2루 상태에서 강판되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던진 105km의 너클볼은 결국 시즌 마지막 공이 되었고, 동시에 그의 야구인생의 마지막 공이 되었다. 몇 달 뒤 그는 은퇴를 발표한다. 45세의 너클볼러는 그렇게 마운드를 떠났다.





팀 웨이크필드 #1
 
 
 
 
팀 웨이크 필드 Tim Wakefield
 
 
 
1988년. 1루수 팀 웨이크필드는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지명, 월급 700불짜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2할을 전전하는 타자에게 팀은 오랜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마이너에 합류 후 1년이 넘어가자 서서히 방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감독인 우디 하이키가 제게 왔죠. 제가 다른 1루수와 캐치볼을 하면서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본 거예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트라이크도 던질 수 있나?' 그래서 '네. 고등학교 때 투수도 했어요. 못할 것도 없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시합이 끝나고 마운드에서 조금 던져봤어요. 감독님은 아무 말 없었죠. 잠시 후 사무실로 저를 불렀는데 코치들이 앉자서 저를 평가하더군요. 영화 <열아홉 번째 남자>에 나오는 상황 같았어요.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에게 불려가는 장면 말입니다. '참 나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위에서 그렇게 결정해서 내려온 건데… 구단에서 자네가 1루를 맡는 걸 원하지 않아 투수로 변신했으면 하는 모양이야'
 
저는 싫었습니다. 뭐랄까. 기분이 상했어요. 이렇게 빨리 나를 포기하는 건가 싶었죠. 저는 아직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감독님은 '안 돼'라고 말하니까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보면 투수로 전향하던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좋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죠.

-다큐멘터리 '너클볼' 중 팀 웨이크필드.



1992년 깜짝 전향한 이 듣보 너클볼러가 거둔 성적은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였다. 2할을 전전하던 타자가 투수로 전향해,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전향하고서 방어율 2점대 초반을 찍은 것이다. 피츠버그는 이 듣보 신인 너클볼러에게 1993년 홈 개막전 선발을 맡긴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볼넷 열개), 그 해 성적은 6승 11패 5.16. 다음해 팀은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 감독인 짐 릴랜드(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는 그의 깜작 데뷔를 '괴상한 일'이라고, 그의 급작스런 몰락을 '끝난 동화'라고도 했다. 너클볼은 그런 것이었다. 완벽하게 제구 되어도 늘 의심받는, 부상, 성적부진으로 인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선택되는, 던지는 투수조차도 결국 어디에 꽂힐지 모르는 그런 구질. 최초의 너클볼러라 불리는 더치 레오나드의 너클볼 역시 '어깨부상으로 인한 퇴출'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팀 웨이크필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계약을 맺는다. 팀 웨이크필드가 팀에서 방출되자, 눈여겨보던 보스턴이 필 니크로에게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필 니크로가 '가능성이 있으니 무조건 잡으라'고 조언했다. 보스턴은 팀 웨크필드에게 선배 너클볼러인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전수 받는 조건을 포함한 마이너 오퍼를 넣었다. 팀 웨이크필드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필 니크로와 만나게 된다. 필 니크로는 1960년대를 호령한, 46세의 나이로 300승을 거둔 너클볼의 제왕이었다.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신데렐라가 다시 드레스를 고쳐 입는 순간이었다.





웨이크필드를 지켜보는 필 니크로
 



너클볼Knuckleball

대부분의 투수들이 구사하는 구질들의 대부분은 잡는 모양, 스핀 등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혹은 스트레이트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108개의 실밥이 그립에 따라 회전하며 다양한 형태로의 궤적를 만들어준다. 손가락 끝으로 회전을 주기 때문에서 투수들에게 손톱 관리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구질이 손과 손가락을 이용해 잡아 긁으며 던진다면, 너클볼은 '밀어' 던진다. 대부분의 구질들이 인위적으로 공의 회전을 만들어 홈플레이트까지의 다양한 궤적을 만들어내는 것과 반대로 너클볼은 공을 찍어 밀어 던져 회전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서 바람, 공기의 밀도, 습도 등의 저항에 의해 듣보스런 궤적을 만들어낸다.




최훈이 그린 너클볼에 대한 완벽한 써머리.
 

 
일반적인 포심패스트(직구)의 구속의 2/3의 속도로 날아오는 너클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힘을 잃으며 저항에 의해 투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 무브먼트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그건 제구와 환경이 완벽할 때 얘기다. 공에 회전이 1-2바퀴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너클볼은 타짜의 빠따에게 '어서옵쇼'하는 배팅볼이 되고 만다. 밋밋하고 느려터진, 치기 딱 좋은 배팅볼이 되는 것이다.



제왕 필 니크로도 이 마구를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 빠른 구속(좋은 어깨)을 요구하는 구질이 아니므로 누구나 입문할 수 있지만, 제어가 힘들다는 점 때문에 누구나 완성할 수 없는 구질이 된다. 제어가 되지 않음이 확인되는 '폭투'의 경우 필 니크로는 한 경기 두 자리 수 이상(10개 이상)을 11번, 전담 포수가 따로 있었던 팀 웨이크필드 역시 5번을 기록했다. 게다가 느린 구속으로 인해 도루허용이 빈번해 진다. 팀 웨이크필드는 2010년 4월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9개의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구단은 이러한 너클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팬 역시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팀 웨이크필드는 말한다. '너클볼이 내 인생과 닮았다'고…





팀 웨이크필드 #2

200승이라는 결과는 그가 19년 동안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방어율로만 놓고 보면 그리 화끈하지 않다. 시즌 중반에 데뷔해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를 결과를 얻은 1992년과 시즌 풀타임 27경기 16승 8패 2.95를 기록한 1995년을 제외하고 풀타임 선발로 출장하여 4.0 미만을 찍은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오가면서 19시즌을 뛴 평균방어율은 4.41(463선발 200승180패) 한때 팀 동료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경우 18시즌 평균 방어율은 2.93.(409선발 219승 100패) 비슷한 승수를 거두고 은퇴한 존 스몰츠의 경우 21시즌 평균방어율은 3.33이다.(481선발 213승 155패)


 
전성기 시절, 페트로 마르티네스
 

 
그런 팀 웨이크필드가 19시즌을 뛰는 꾸준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패전전용 중간계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모욕'을 느끼면서도 그는 팀이 요구하는 자리에 앉자 있었다. 불펜 강등에 따른 항변도, 트레이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너클볼러로 전향하지 않으면 팀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데뷔 1년차 상황을 19년 동안 반복 또 반복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극성맞은 팬으로 치면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최고라 하는 보스턴에서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팀 웨이크필드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200승을 따낸 순간보다, 펜웨이파크의 그린 몬스터를 뒤로하고 은퇴기자회견을 하는 순간보다 2003년 앙숙 뉴욕 양키스와 붙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7차전의 그 순간일지 모른다. 팀 웨이크필드는 1차전 6이닝 2실점 승리, 4차전 7이닝 1실점 승리로 시리즈 MVP로 거론되고 있었다. 게다가 팀이 8회까지 5-1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 85년 만에 밤비노(미국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을 루스의 애칭인 밤비노에 빗댄 표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8회 동점허용. 결국 연장 10회 월드시리즈 진출을 대비해 휴식을 취하던 팀 웨이크필드도 출격한다. 10회를 잘 틀어막고 맞이한 11회 말. 팀 웨이크필드는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다. 밤비노의 저주를 깰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장본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은 환호했고, 보스턴은 절망했다.


다행히 다음해인 2004년. 또다시 리그챔피언쉽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보스턴은 역사적인 리버스스윕(3게임을 진 뒤 4게임을 이겨버리는)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내셔널리그 우승팀 세인트루이스와 만난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팀 웨이크필드는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5실점 한 채 강판되었으나 불펜의 선전으로 승리. 2차전 실링의 6이닝 1실점(무자책), 3차전 마르티네스의 7이닝 무실점, 4차전 데릭 로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리즈를 스윕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챙긴다. 아마 우승을 못했더라면 그에게도, 너클볼에게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2003년 홈런의 순간(좌) – 좌절의 순간 (우)

 

2007년 보스턴은 또 한번의 우승을 경험 한다. 2009년 팀 웨이크필드는 메이저 데뷔 13년 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발된다. 하지만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2011년 마지막 시즌에 거둔 성적은 7승 8패 방어율 5.12. 3,006이닝(통산 3224.1이닝)으로 보스턴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고, 팀 최고령 승리투수(44세)가 되었으며, 단일팀(보스턴) 17년 활약이라는 투수 최장기록도 세웠다. 통산 2,000 탈삼진, 200선발승 이라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2012년까지 계약이 되어있었고, 18승이 모자란 보스턴 팀 사상 최고승인 192승(사이 영, 로저 클레멘스)에 도전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1995년 보스턴 이적 첫해 활약 (16승 8패 방어율 2.95)으로 아메리칸 리그 재기선수상을 받았고, 2010년 사회공헌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선수에게 주는 로베르토클레멘테상을 수상했다. 조직에서 외면 받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너클볼러다운 수상경력이라 할 수 있겠다. 2012년. 팀 웨이크필드는 조용히 마운드를 떠났다.





조상구



'일어나요. 빨리. 처자식 굶기고 싶지 않거든 어서 일어나서 던져요'



마동탁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다 마동탁에 친 공에 맞고 쓰러진 유성구단의 후보 투수 조상구에게 마동탁이 던진 말이다. 하지만 조상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 조상구의 볼을 마동탁은 쪼개면서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마동탁… 씹쉐이.



조상구를 눈 여겨 본 전 유성구단 감독이었던 손병호 감독은 그가 준비중인 외인구단에 그를 초청한다. 손감독이 설정한 외인구단의 입단 조건은 '박대받고, 설움받는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대받고, 설움받은 오혜성, 백두산, 최경도, 하국상, 외팔이 최관, 그리고 조상구 이렇게 여섯이 무인도로 지옥훈련을 떠난다.


지옥에서 돌아온 외인구단. 마동탁의 유성구단과 결전의 날을 앞두고 손병호감독은 선발로 조상구를 선택한다. 조상구는 경기에 앞서 아들에게 표를 건내지만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몇 해 전 마동탁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연습상대로라도 제발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애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마운드에 선 조상구. 하지만 그는 예전의 조상구가 아니었다. 9이닝 4안타 무실점 완봉승. 아들도 결국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조상구가 마동탁의 최강 유성구단에게 물 먹인 구질은 바로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체득한 '너클볼'이었다.


 

손가락을 잘라 완성한 조상구의 너클볼

 


찰리 허프와 손병호

너클볼러들의 유대감은 다른 투수들과는 달라 보인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도움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세를 봐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유대감을 통해 너클볼은 더치 레오나드에게서 시작되어 호이트 빌헬름(너클볼 마무리투수, 마무리 투수로 최초 명예의 전당 헌액), 필 니크로와 찰리 허프를 거쳐 팀 웨이크필드에게 전수되었다. 현재 팀 웨이크필드에 이어 R.A 디키가 너클볼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R.A 디키 역시 팀 웨이크필드에게서 이어진 자신의 너클볼에 대해 너클볼러간의 유대감에 의한 결과라 주저 없이 말한다.


'(감독은)당장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잘 못하더라도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활동중인 R.A 디키의 멘토인 찰리 허프가 한 말이다. 첫 선발 데뷔에서 완투승을 거두고도 마무리로 12년 동안 활동하고 나서야 다시 선발에 나서게 된, 그 역시도 너클볼러 였다.


배팅볼 투수인 조상구에게 모욕감을 주던 마동탁에게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2억짜리 선수답게 굴어. 프로 세계에선 선후배 관계도 없는 줄 알아'


마동탁은 팀 최고 스타였다. 아무리 감독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마동탁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왜 지랄이냐'고 말하자 손병호감독은 시원하게 한마디 해준다.



'닥쳐 씹새야'



어깨가 망가져, 혹은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구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찾아온 선수에게 찰리 허프는, 배팅볼 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해 한참 어린 후배에게 욕지거릴 듣던 조상구에게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말이다.

  
 
 


손병호감독


 

너클볼을 받아랏

우리는 지금 성공시대를 살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다 해봐서 안다'는 지 자랑을 쏟아내는, 성공보장 이벤트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성공했으니 이제 힐링이 필요하다 대놓고 판을 벌리는 그런 시대, 바야흐로 성공시대에 살고 있다.



성공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도 힘들었다고' '그럼에도 성공했다'고 말이다. 성공한 이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나와 '힐링'이 필요하다 떠든다. 성공이 아닌 평범한 삶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러고 있냐' '문제없다' '다 그런 거다' '나도 이렇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우리 함께 사는 곳엔 아픈 사람들에게 '성장통'이라 훈수 두는 사람과 '나도 아파 봐서 안다'는 무용담을 말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아픈 이유에 대 진심으로 묻거나, 보건소를 많이 짓자고, 병원을 많이 짓자고, 보험의 혜택을 늘리자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람은 있는데,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어른은 있는데, 천번도 흔들리지 않은 어른 탓이라고 고백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자신이 힘들게 성공했다 말할 뿐이지, 누가, 왜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멘토에 열광하면서 멘티에겐 관심을 주지 않는 불공평함이다. 쳇



우연히 김난도 교수의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의 출간소식을 접해 듣고, 너클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너클볼러 팀 웨이크필드가 떠올랐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너클볼이 꼭 자신과 같다는 말을 꼭 내가 한 말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손에서 공 떠나면 끝이라는 책임과, 인생 언제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에 동의했다. 그렇다고 내게 조상구처럼 손가락을 잘라 성공할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만큼의 성공을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때론 '네 탓이 아냐'라고 말해줄 누군가와, 함께 아픔을 나눌 '유대'가 필요했었다. 그 생각에 너클볼러라는 나의 닉네임도, 팀 웨이크필드가 떡 하니 걸려있는 프로필 사진도 10년 넘게 그대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보지 않았지만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힘든 시대에 필요한 건, 어른들의 훈계와 독려가 아니라 진심 어린 '반성', 함께 나누고자 하는 '유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청춘이라는 너클볼러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픔을 극복하고 최고가 되라'는 성공의 독려인지, 아니면 조금 더 믿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신뢰와 유대일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 모든 청춘들이 '퐈이어 볼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 릭키 스턴, 앤 선드버그감독의 다큐멘터리 '너클볼'과 김형준기자의 기사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진짜는 남훈이 아니라 안감독이다.




어제 춘심애비의 글은 슬램덩크의 캐릭터를 통해 곽노현사건에 대해 진중권을 필두로한 진보진영 내부의 논쟁을 풀이함으로서 많이 이들의 보다 쉽게 이 문제에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왔다고 본다. 왜?. 기존에 진중권 옹호, 혹은 반대의 글들은 대부분은 먹물 좀 먹었다고 쪼개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논쟁이 진행되믄서 여론과의 간득은 벌어진다. 논쟁으로 인한 파열음만 소음처럼 출력될 뿐, 합의는 도출되지 않는다. 아니 근접해가지 못한다. 이게 다 니들 잘난 탓이다. 허니 좀 쉽게 가자. 많은 이들이 스무쓰하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때 비로소 근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거다… 흠…


춘심애비는 어제 풍남고 남훈을 끌어들여 논쟁을 풀어냈다. 하지만 집지 못한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늘 앉자만 있는 ‘켄터키후라이드 할배’ 바로 북산의 안감독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본인 참~ 즐겨보는 메이저리그 동영상 함 때려보자.




이거 뭐냐.

작년에 있었던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홈경기.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는 퍼펙트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단 한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는 않아야 달성되는 퍼펙트게임은 당시 메이저리그 역사상 21명밖에 하지 못했던 졸라 씨바스런 기록, 이걸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도 9회말 투아웃, 헌데… 심판 짐 조이스의 오심으로 퍼펙트게임이 한순간 날라갔다. 짐 릴랜드 감독이 바로 튀어나갔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역사적인 기록은 그렇게 한순간에 ‘심판’ 때문에 날라갔다. 그리고 경기 이후 그 판정은 오심임이 확인되었다.



눈물을 흘리는 짐 조이스.



 화해하는 훈훈한 짐 조이스, 갈라라가.



다음날…

짐 조이스는 갈라라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왜?. 앞으로 삼대는 칭찬만 들어도 될만큼 졸라 욕먹었거든, 오죽하면 백악관에서도 '졸라 슬프다'는 성명을 다 냈을까. 어쨌든. 심판은 사과했고, 선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퍼펙트게임은 날라갔다. 그러니까 모든 게임에서 ‘심판’은 승패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시말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심판이 '팽'하믄 조땔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풍전의 남훈이라 했던가.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의 예도 디트로이트였지만, 90년대 NBA, 그러니 마이클조던,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라는 핏덩이 불스 삼각편대가 슬슬 주름 좀 잡던 시절, 그들조차 깨깽거리게 했던 팀, 바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다. 뭐 한마디로 주전 다섯명이 모두 남훈인 팀(남훈은 당시 디트로이트의 데니스 로드맨을 롤모델로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BAD BOYS라고 했을까. 천하의 조던도 오줌 저렸던 바로 그 팀. 그러니까 남훈이란 캐릭터, 스포츠 캐릭터로서 그리 새롭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거다. (그러고 보니 모두 디트로이트, 각하가 침 질질 흘리며 미쿡 빨아준 곳도 바로 디트로이트, 아! 멋쟁이 가카.)


 어훜, 숨막혀~!


여기서 우린 남훈이 코트를 누비고 있음에도 가만히 앉자만 있는 안감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감독이 가만히 자신의 궁디보다 작은 의자에 의지해 상당히 불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의자가 똥꼬에 붙어있기라도 한 모양으로 꿈쩍도 안했던 이유는 바로 ‘경기는 공정’했기 때문이다.

헌데 만약 심판이나, 연맹이 편파적이거나, 혹은 매수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훈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보면 된다. 공정택이 남훈이고, 곽노현이 강백호다. 심판은 검찰이고, 연맹은 검찰을 포괄한 공권력이다. 남훈의 푸싱은 ‘푸싱’이고, 강백호의 푸싱 ‘푸싱+테크니컬파울+경고’인 상황인 것이다. 강백호는 살짝 항의했다 바로 퇴장, 남훈은 4반칙으로 경기를 끝까지 뛴다.(물론 공정택은 구속되었지만)



아니. 심판이 대놓고 저쪽편이면 게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쫑'이다. 


강백호에게 애초부터 남훈처럼 ‘푸싱’하지 마라고 할 수 있다. 악의적인 파울이 악의적인 파울로 지적되고, 일반적으로 넘어갈 수 있을만한 푸싱은 푸싱 그자체로 판정되는 공정한 게임이면 당연 ‘악의적 푸싱’은 안된다. 헌데 안타깝게도 강백호(곽노현)은 악의적으로 보일만한 푸싱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푸싱+테크니컬파울+경고’먹고 보너스 원샷에 공격권까지 준다. 그리고 일반적 항의를 한 강백호를 퇴장시키고, 연맹은 강백호를 징계시킨다. 푸싱 이상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자. 만약 이런 불공정하고 씨바스런 게임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안감독의 궁디는 여전히 무거웠을까. 연맹에서 강백호의 징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안감독은 그냥 멍때리고 있었을까. ‘음… 자네의 실수네.’이러면서…

심판(검찰)과 연맹(공권력, 언론)이 매수당한 이 상황에서, 푸싱을 저지른 강백호(곽노현)을 놓고 우린 어떤 스탠스를 취했어야 옳은가. ‘이 빙신 남훈이랑 똑같은 놈아’라며 코트밖으로 내몰았어야 하는가. 서태웅도, 정대만도, 송태섭도, 채치수로 졸라 다 나가떨어지고 있는데, 안경은 여전히 ‘하지말라’ 그 타령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안감독은 그 광경은 보고도 ‘궁디 무거운’ 탓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선 항의했어야 한다. 흥분한 채치수나, 정대만 이런 놈들을 대신해 안경이 먼저 나서서 논리적으로 항의하고, 그래도 안되면 안감독이라도 뛰쳐나갔어야 한다. 그건 강백호(곽노현)의 푸싱이 푸싱이 아니라는 항의가 아닌, 푸싱을 정확히 푸싱이라 판정하라는 항의를 했어야 한다. 언제? 심판이 판정하는 바로 그 순간, 문제가 생긴 바로 그 순간 들고 나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자, 곽노현을 지지하는, 지지하지 않더라고 매수당한 심판과 연맹에 항의했어야 하는 우리들이 취한 스탠스가 무엇이었는지. ‘강백호 빙신’바로 그것이었다. 아무것도 못한 사이, 남아있던 주전 네명은 반병신이 됐다. 게임엔 졌고, 강백호는 연맹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자신이 퇴장당하거나, 아님 몰수패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고 안감독은 그 무거운 궁디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했어야 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몫은 안감독과 팀이 지면되는 것이었다. 편파적인 심판과, 불공정한 게임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관객은 편파적인 심판에게 야유하고, 동시에 안감독을 지지했어야 옳다. 이미 벌어진 강백호의 푸싱에 대한 논의는 그 다음이란 것이다.

아마 강백호의 징계수위는 ‘영구제명’정도가 될 것이다. 이게 바로 곽노현교육감사건의 현재다. 매수당한, 편파적인 연맹은 강백호는 영구제명 시키거나, 2-3년정도의 출전정지 정도를 때릴 것이다. 영구제명이면 강백호 다시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 싸움박질이나 할테고, 그나마 2-3년 출전정지라 해도 선수생명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언론은 영구제명일 경우 올바른 징계였다 할테고, 2-3년 출전정지면 선수생명을 배려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안감독은 무엇을 해야 하나. ‘자네 때문에 좆됐군’이라며 강백호 타령만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요즘 돌아가는 시츄에이션을 보아하니 누군가는 ‘곽노현타령’만 하고있고, 누군가는 ‘진중권타령’만 하고 있다. 검찰과 언론은 이 광경을 보고 졸라 흡족해 할거다. ‘지들끼리 저러고 있다’고 말이다. 항의와 논의(토론)은 명확히 하고 싸우자, 불공정한 이게임에 대해선 ‘항의’, 진중권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그리고 진중권에 문제제기에 대한 반론들에 대해선 논의(토론). 맨날 이걸 명확히 하지 못하고 가니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진다. 아 열받아.

이게임의 심판은 퍼펙트게임을 날린 짐 조이스처럼 후회하거나 반성할 기미가 전혀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안감독의 궁디는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그 이전에도 몇몇 독투에 글을 올리긴 했지만서도, 아마 이 글 덕에 슬슬 주목(?)을 받기 시작한 듯 하다. 그리고 이글은 내용에도 나와있듯이 춘심애비님의 '진중권의 주장에 대한 슬램덩크적 접근'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난 지금, 춘심애비와 그리고 딴지일보 편집부국장인 필독과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듣보 사모임을 결성, 간간히 체력테스트를 겸한 처형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 양반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어쩌면 이게 다 가카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몇개월 뒤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로다.


춘심애비를 만나게 될줄 어찌 알았겠는가.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뿌홀과 이대호, 그리고 친정엄마론.




그래도 명색이 ‘닉’이 너클볼러인데 야구 얘기 함 하자.



뿌홀과 이대호.

알버트 푸홀스Albert Pujols(이하 뿌홀).



이래뵈도 ’32’이라능…


1980년 도미니카 공화국 출생. 1999년 세인트루이스 입단. 당시 보너스는 6만 달러. 2004년 세인트루이스와 8년 1억 1100달러 계약, 그리고 시즌 후 FA가 된 올해 세인트루이스가 아닌 에너하임 에인절스와 10년간 2억 5400만 달러로 연봉총액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은 전체 2위. 계약기간 10년으로 최고. 거기에 중간에 계약해지가 가능한 옵트아웃 없고, 전구단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포함되어 있는 공히 최고의 계약 성사시켰다. (총액으로만 에이롸드에게 2300만달러 뒤진다). 세인트루이스의 프렌차이즈 스타가 될 것이라 기대했던 메이저리그 최고선수의 이적이 확정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는 9년에 2억 달러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뿌홀은 당연 에이롸드급의 리그 최고의 계약을 원했을 것이다. 허나 총액과 기간 그 어느것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은사와도 같은 라루사 감독마저 우승 후 은퇴한 상황이니 이적에 적합한 조건이 조성된 것이다.




파란색은 리그 평균, 녹색은 뿌홀
1.출루율 2.장타율 3.볼넷,삼진비율


테드 윌리엄스 이후 (.344 .482 .634)이후 가장 완벽한 타자라 불리우는, 현존하는 타자 중 가장 완벽한 넘. 생긴 것답지 않게 상당히 어린 넘. 이 넘이 올해 FA 자격을 얻어, 남았다면 홈구장 앞에 동상이 세워질 것이 거의 확실함에도, 모든 홈팬의 간절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에너하임으로 둥지를 옮겼다. 최고의 선수, 최대의 이적이 성사된 것이다.



이대호.



잘 뛰기까지 했더라면…


1982년생. 올해 나이 29세. 2001년 롯데 입단. 194cm의 키에 130kg, 허벅지 둘레만 84cm. 출렁거리는 뱃솰. 그러나 야구계의 효돌이라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은, 체구에 걸맞지 않은 완벽한 밸런스. 그런데다 공격 8개 부분 중 7개 부분에서 1위, 9게임 연속홈런까지, 임팩있는 기록,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완벽한 상품성까지 갖춘 최고의 타자, 최고의 스타인 그가 소속팀 롯데가 아닌 일본의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을 했다. 2년 계약에 7억 6천만엔, 대충 우리나라 돈으로 110억짜리 계약이다. 이승엽의 2004년 5억엔, 김태균의 1009년 7억엔을 뛰어넘는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와 우리는 이렇게 확실히 예고된 빠이빠이를 했다.


이대호의 통산 성적. 2010년은 그야말로  ’ㅎㄷㄷ’ / 한국야구위원회


미쿡을 대표하는 뿌홀, 한국을 대표하는 이대호는 이렇게 친정팀을 떠났다. 뿌홀은 FA를 앞둔 작년 재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은 구단의 태도가 FA가 된 올해도 바뀌지 않은 서운함을 토로했고, 이대호는 언론에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만 작년 7관왕을 차지한 뒤 역시 FA를 앞둔 시점에서 구단의 대우에 섭섭했을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시즌 후 7억을 요구한 이대호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봉조정 신청을 했다.(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둘은 환히 웃으며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 약간의 차이라면 에너하임은 미국의 팀 중에서도 상당히 분위기가 좋다는 장점이 있고, 일본으로 떠나는 이대호에게 그런 메리트는 없다는 거. 세인트루이스는 뿌홀에게 리그 최고대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롯데는 이대호에게 4년간 총액 100억(80억+옵션20억)이라는 최고대우를 제시했다는 거.

어쨋거나 뿌홀은 리그 최고대우를 향해 떠났고, 이대호는 일본 중상급대우를 향해 떠났다. 떠난 건 이렇게 다른 듯 다르지 않다.



출가외인론.

제이슨 지암비라는 선수가 있다.



최고의 타자이자, 팀의 리더였던 풋풋한 시절의 지암비


그러니까 영화 ‘머니볼’에서도 언급되는 바로 그 선수.

2001년, 전체연봉순위 29였던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 전체 2위인 102승을 거뒀다. 바로 그해 시즌을 마치고 FA가 된 제이슨 지암비는 양키스와 계약, 오클랜드를 떠났다. 그러나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이름값을 못했다. 2008년 0.247, 32홈런, 96타점으로 마냥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으나 2009년에 오클랜드와 1년 계약. 2할에도 못 미치는 활약으로 결국 쫒겨난다. 여전히 오클랜드를 지키고 있는 빌리빈 단장은 지암비를 쫒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지암비가 그리울 것이다’

오클랜드의 6년 9100만 달러 제안을 뿌리치고 7년, 1억 2000만에 양키스로 향한 지암비가 7년 뒤 오클랜드와 맺은 계약은 1년 450만 불이었다. 게다가 시즌 중 쫓겨났다. 한때 클럽하우스 리더. 리그 최고의 슬러거였던 지암비의 그때 나이는 ‘38’이었다.

톰 글래빈이란 투수도 있다.



최고의 왼손 중 한명으로 기록 될 남자.


메이저리그에 웬만큼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애틀랜타의 삼인방 ‘그랙 메덕스’ ‘존 스몰츠’ 그리고 톰 글래빈을 모를 리 없다. 애틀란타의 전성기를 이끈 무적 삼인방.

톰 글래빈은 늘 매덕스에 그늘에 가려지긴 했다만 2002년 그는 매덕스를 넘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FA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애틀란타가 제시한 조건은 1년에 900만이었다. 그해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글래빈은 4년 간 3850만 달러를 제시한 뉴욕메츠로 향했다. 뉴욕 메츠는 다름 아닌 지구 라이벌이었다.

2006년 계약이 끝난 글래빈은 친정팀 애틀란타로 가고 싶어했다. 290승을 거둔 그는 300승을 친정팀 애틀란타에서 거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뉴욕메츠와 다시 1년 계약을 한 글래빈은 애틀란타가 아닌 뉴욕메츠 팬들에게 300승을 선사했다.

이듬해 2008년 애틀란타와 1년 800만 달러 계약했으나 부상으로 아웃. 이듬해 1년 100만 달러 재계약, 그러나 복귀를 앞두고 그는 방출됐다. 로스터 명단에 들면 애틀란타가 그에게 추가로 100만 달러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설의 왼손투수는 그렇게 그 다음 해 은퇴했다.



친정엄마론.

이승엽이란 선수가 있다.



그래도 염연한 기록의 사나이.


2003년, 56홈런이란 전대미문을 기록을 세운 라이온킹. 이 28세의 선수는 향후 몇 년 안에 모든 공격부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도 남을 만큼 훌륭했고 잔류만 했다면 구단 역사에 남을 프렌차이즈스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FA가 되기도 전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다저스를 비롯한 4개구단 정도를 접촉했으나 100만 달러 정도의 수준, 1군 보장 등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급선회. 2년 6억 엔에 지바롯데 행을 결정했다. 삼성은 4년에 60억 정도의 최고 대우를 준비하고 있던 이승엽과 제대로 접촉도 해보지 못했다.

지바롯데-요미우리자이언츠-버팔로오릭스를 거치면서 8년을 보낸 이승엽의 통산 타율은 .257 홈런은 19.8. 수치만으로보면 크게 나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적의 추이를 보면 말은 달라진다.



이승엽의 일본리그 통산 성적.


올해 한신타이거스와 2년 계약 후 첫시즌 성적은 .201이다. 홈런15개, 51타점. 그리고 이승엽은 한국 복귀를 선언했다. 친정팀 삼성라이온스는 1년 8억이라는 심정수(7억5천)이후 최고 연봉을 이승엽에게 안겨줬다. 삼성은 선수를 주식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바닥을 쳤으니 상한가만 남았다는 뭐 그런 심보.

한편 LG의 조인성은 올해 FA 자격을 얻고 SK와 3년 최대 19억(연봉4억)에 계약했다. 14시즌 동안 평균 성적 .258 149홈런, 647타점. 작년 성적은 .317 28홈런으로 알찬데다 포지션은 수비력만 좋아도 그 가치를 반은 먹고들어가는 포수. 내가 구단주라면 이승엽을 데려오느니 조인성을 두명, 미래의 조인성을 여덟명쯤 데려오겠다. 이승엽과 조인성은 ‘36’ 동갑이다.

한술 더 떠 김태균이란 선수도 있다.



’결혼'으로도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좌절’을 안겼던 김태규니.


2009년 시즌을 마친 김태균의 9년 동안의 통산성적은 .310, 188홈런, 701타점으로 훌륭했다. 거기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의 임팩트한 활약으로 그해 풀린 FA(이범호, 김상훈, 박한이 등 총 9명)중 최대어로 뽑혔다.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이었지만 그 누구도 한화에 남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한화는 4년간 50억이라는 당시 최고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태균은 3년에 5억 5000만 엔(약 71억)을 제시한 지바롯데로 향했다. 여기에 한해 100경기 이상 출장시 5000만 엔(6~7억) 보너스는 별도. 큰 부상이 없으면 선수엑 100경기는 기본. 이에 따르는 보너스가 6~7억이라는 계약조건에 김태균은 당시 졸라 좋아했다. 그것도 언론에 대놓고…

김태균의 일본 진출 첫해 성적은 .268이었다. 홈런21개 92타점. 올해성적은 .250 1홈런 14타점. 손목과 허리 등의 부상을 입었고, 6월 치료목적으로 입국, 결국 8월에 구단으로부터 퇴단. 끝.

시즌을 중단하고 도망온 선수를 기필고 잡아오겠다고, 한화의 구단주인 김승연 회장이 선언했다. 김태균의 지바롯데 퇴단이 확정된 직후의 발언. 김승연 회장이 누구던가. 주먹도 놀랄 만큼의 화끈한 분 아니시던가.

근데 이 양반, 도가 지나쳤다. 성적도 형편없는데다 부상까지, 거기에 시즌을 중도에 포기하는 저질 멘탈까지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친정팀 한화는 1년 옵션 없이 15억을 안겨줬다. 동네 양아치도 이런 계약 하지는 않을 거다. 참고로 얼마 전 창단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1년 연봉은 1천만원이다. 에라이…


뿌홀과 이대호의 미래.

새로운 팀 적응도, 성적도 훌륭하다고 해보자.



그 누가 이장면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뿌홀은 매년 +200억씩 찍어가면서 애너하임에서 이름값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인트루이스가 아닌 애너하임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가 세울 수 있는 공격부분의 기록들은 애너하임에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뒤, 세인트루이스 복귀로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할 수 있다. 많은 선수들이 자신이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팀에 와서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그도 박수를 받으며 좋은 조건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대호는 2년 뒤 일본 잔류냐, 메이저리그 진출이냐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능할 경우 바로 넘어갈 것이다. 이승엽이 삼성에서 FA를 얻고 일본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먼저 타진하다 포기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100만 달러(10억)정도의 연봉과 선발로스터의 확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대호도 같은 룰로 타진할 것이다. 그렇게 미국을 선택하고, 차선으로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국내복귀를 입에도 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젠 정반대. 적응도 못하고, 성적도 부진하고, 부상에 시달리는, 말 그대로 조땟다고 가정해 보자.

뿌홀이 조땟다. 우선 계약을 추진한 단장의 등꼴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슬슬 입맛이 떨어지게 되고,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참다 참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화를 든다. 연봉보조를 조건으로 세일을 한다.

근데 연봉이 보통 연봉이어야지. 연봉에 뿌라스 마이너 유망주 몇 명 보탠다. 그래도 콧방귀를 뀔 확률 80%, 연봉보조 이빠이 올리고, 유망주에 지명권까지 넘겨 간신히 오케이 한 정신나간 단장하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뿌홀이 ‘노’하면 끝이다.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는 장기계약은 이래서 무섭다.

그래도 뿌홀은 프로선수이자 인간 아닌가. 팬과 구단의 성화에 트레이드를 결국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과거 박찬호와 함께 메이저리그 먹튀 상위권을 달렸던 마이크 햄튼이 그러한 전철을 밟고 은퇴했다.) 그렇다고 친정인 세인트루이스가 그를 받아줄 확률은 높지 않다. 그건 어느 구단이던 마찬가지. 결국 10년이 지나야 친정팀 세인트루이스가 헐값에 그를 부르게 되면 그제서야 그는 친정팀에서 선수활동을 연명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어느 정도 가망이 있을 때 얘기다.


이대호. 너만은 조때지 않기를…


이대호가 조땠다 보자. 2년 계약이니 아무리 조때도 2년이다. 김태균이처럼 튀지 않으면 2년을 버틸 수 있다. 2년이 지나면 이승엽이처럼 어떻게는 일본에 더 남아보려 할 것이다. 성적이 개판이니 미국진출은 개뿔인 시츄에이션. 한 팀도 걸리지 않으면 국내복귀, 걸리면 1~2년 더 뛰고, 상황 봐서 복귀. 그리고 국내리그 최고의 계약조건으로 복귀한다.

FA로이드라고 하지 않는가. 제 아무리 명성높은 선수라도 FA로이드라고 하는 FA를 앞둔 해에 폭발적인 포텐셜을 보여주지 못하면 뿅가는 장기 계약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도대체 삼성은, 한화는 뭘 믿고 그딴 계약 조건를 제시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하향세를 확실하게 찍고 있는 선수에게, 팀에서 몸(부상) 정신(냅다 튄)이 모두 부실한 선수에 8억에게, 15억을 지르는 구단들은 모두 로또 전문가들인가.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그딴 베팅은 하지 않을거다.



재미없는 친정엄마론.

일본이고, 미국이고 나가는 것 좋다.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조건 찾아가는 거 프로선수의 기본욕망이니 이해한다. 그리고 고향인 국내리그에 복귀하는 것도 환영한다. 대신에 철판 깔고 복귀하진 마라. 성적대로 국내리그에 맞는 조건 받고 들어 와라. 나라니, 도전이니, 선진야구전수니 뭐니 지랄하지 말고. 올린 성적 그대로, 그 조건에 맞게 들어와라.

국내 야구의 부흥, 해외진출한 그 어떤 선수와도 관련 없잖나. 그 성공의 몫, 고스란히 국내에서 땀흘리고 뛴 선수들의 몫이 아닌가. 이대호의 이적으로 보며, 이대호의 성장과 그 성장에 열광할 국내야구팬들을 모습을 기대했던 이로서, 이대호의 일본행과 해외진출 선수의 복귀는 섭섭하기로 치면 쌤쌤이다.

애초에 프로답지 못하게 만들어진 그 역사나, 파울볼 주지 말자는 그딴 헛소리나 지껄이는 협회나, 건달회장이 ‘의리’를 명분으로 돈지랄을 해대는 구단이나 그놈이 그놈이니 그냥 넘어가기엔 졸라 찜찜하다. 적어도 그들의 상태라면 용병 연봉 상한선인 30만 달러(3억 5천만원) 정도가 합당하다 본다. 그것도 옵션 포함해서 30만 달러.

얼마 전 환화의 한 선수가 ‘김태균이는 연봉 값을 해낼 것이다’는 인터뷰를 했고, 이승엽이는 지입으로 ‘박찬호와의 대결이 기대된다’고 했다. 김태균이 연봉값 할려면 타율만 놓고 봐도 .400은 해줘야 한다. 그리고 국내팬들이 기대하는 매치업은 류현진과 김광현의 왼손 라이벌 매치나, 윤석민이 던지고 이대호가 받아치는, 뭐 그런 거지 박찬호가 던지고 이승엽이 치는 이벤트가 아니란 말이다.

난 올해 국내야구 열심히 보고, 열심히 응원할 생각이다. 더불어 복귀한 선수들 얼마나 잘 치고, 잘 던지는지 지켜볼 것이다. 최고대우에 모자랄 경우 그만큼의 욕지랄을 해줄 생각도 충분하다.

다시는 시집가서 집안 말아먹고 돌아오는 딸에게 ‘아이고 이쁜 내딸’이라며 감싸주는 덜떨어진 친정엄마 역할을 우리야구가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 뿌홀에 대한 자료는 메이저리그 최고 전문가 '김형준 기자’의 기사를 일부 참고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