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5일 금요일

선배님의 추억

96학번인 내가 추억해낸 몇가지 잡벤트(잡스런 이벤트)에 대해 선배님이 보내주신 멘션. 트윗의 특성상 그냥 내버려두기 아까워 블로그로 옮겨옴.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90년대 '보감'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조금 생각해보다가 괜찮으면 '딴지일보'를 통해 실행해 옮겨봐야지. 참고로 난 95학번 싫어함. 이유는 내가 96학번이기 때문임... 원래 다 그런 거임.




횽의 퀴퀴한 연서에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 쓰는게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 그해 전남대에서 있었던 한총련 출범식의 더위와 한양대의 라이터 불 퍼포먼스? 가 떠오릅니다. 노수석도 생각나고,


무라카미류. 류의 69는 당시 개나 소나 들고 다니던 하루끼의 노르웨이숲에, 에라ㅡ 꼬꼬마 일빠들아ㅡ 같은 나름 덕후들의 일갈이었죠. 덕분에 바나나 요시모토도 생각나고,


그 책들을 자기 출판사에서 출간했다며 추파질을 기다리던 무궁화안의 어느 누나도 생각나버렸습니다. 당시엔 새마을보다 무궁화를 더 선호했는데, 차비보다 새마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었던거 같습니다.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호프집 계산대에서 종일 책만 읽었는데, 차마 그걸 뭐라못하고 속만 태우던 주인아저씨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다니 쾌재를 부르며 금일봉을 하사 하시던 격이 나는군요.



그곳에서 제게 전번을 준 한 여손님이 며칠 뒤 가출해서 무작정 저희집을 찾아온 일과 마침 그날 잡혀있던 미팅 땜에 드 친구를 집에 혼자 놔두고 독다방에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미팅에서 만난 친구와 결혼할 "뻔"


만 했었죠. 미팅을 마치고 같이 간 친구들과 다 같이 돌아와 술 판을 벌였는데 그 때 같이 술에 널부러졌던 한 친구가 그날 밤 그 손님과 썸씽을 벌였었다고 후에 실토하더군요. 그 친구의 동생이 후에 저희를 평하길.



횽들이 사는걸 보면 한편의 시트콤 같다고. 그냥 횽의 밤내나는 연서에 이런것들이 쉬뤼뤽 떠 올라 버렸습니다.



이런 장문의 트윗을 지금 보내는 이유는, 절대 기차를 놓쳐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기 때문은 아니에요.



전북대란 수정을 받았습니다. 호. 그 때 게 계셨다구요. 그럼 생수를 나눠주던 그 언냐들 뒤에 생수통을 들어다나르던 아가들 중 횽이 계셨겠군요 : ) 혹시 군산엔 한번 오신적이 있으신가요. 그 무렵?




추억이란 모름지기 메커니즘적으로다가 지자랑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선배님이 보내주신 멘션에도 살짝 '그거시' 가미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당시 한총련의장은 '정명기'였던 것 같다. 95년도 출범식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출연한)홍경인이 왔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96년엔 뭐 그런 유명인이 나오지는 않았다. 백주대낮에는 뻘짓이지만 깊은 밤 팔뚝질과 라이터질을 함께 때로 해 대믄 그거 꽤 볼만하긴 했다.

트위터로만 연통하는 생면부지의 선배님(선배님인 건 확실하다)과 그자리에 같이 있었던 것이다.

뭐 그것뿐이었을까. 어딘가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확인된 것처럼 같은 장소에 있었을지도 모르고...

차카게 살자. 세상은 이처럼 존나 좁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내' 뭐 이런 동요가 다 있는 거다.

천하장사 이봉걸선생께서도 그리 말했다. '내가 나쁜짓을 한 적이 없어서 사업망하고 그랬어도 지금 이렇게 떳떳하게 놀러 다닌다'고 말이다.

때론 어른 말 들어서 손해 될 거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때론'이다.


참고로 선배님이라 부른 내게 선배님께선

'헐. 선배님이라뇨. 이 횽이 자꾸. 전 횽과 같은 열성당원이 아닌 1년계약의 비정규직 좌익용공분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랬다. 내가 '열성당원(?)인지는 모르겠는데, 선배님은 곧죽어도 선배님... 맞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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