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좌충우돌세계사] 윌리엄 켐러, 로젠버그 부부 전기의자에 앉다 (1)




처형.

같은 단어인데 하나는 아내의 언니를 뜻하고, 하나는 사형에 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후자가 뜻하는 처형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두대로 머리를 자르는 참수형이 있고, 세르베투스와 같이 태워 죽이는 화형(지난 기사 ‘[역사]세르베투스, 타죽다’ 참고), 산 채로 살을 잘라내는 능지, 그리고 목을 매달아 죽는 교수형, 독극물을 주입하는 독살형 등이 있다. 미셀 푸코의 처형의 역사 서막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잡힌 다미엥의 처형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의 딱 5페이지만 넘겨보면 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 그리고 그러한 처형의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성찰에 접근하게 된다. 인간의 악랄한 본성만큼이나 다양한 처형 방법. 그 중엔 전기의자도 있다. 참고로 내 글은 그러한 실존적 성찰과는 전혀 무관하다.




세르비아 100디나르 지폐 속 니콜라 테슬라. 공식과 도면도 친절하게 들어가 있다.



1856년생, 니콜라 테슬라란 양반이 있었다. 보통 유명한 양반이 아닌 테슬라 역시 세르베투스, 칼뱅과 마찬가지로 엄친아였다. 따지자면 칼뱅보단 세르베투스에 가깝다. 전류전문가로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다이다이로 붙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크로아티아 출신인 테슬라는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수학에 탁월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풀고 해결하는 일종의 ‘독립식 엄친아’였다. 어린 엄친아 테슬라는 엉뚱하게도 우주와 UFO에 심취해 있었고,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주와의 직접 교신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전기가 필요하다 졸라 명쾌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학비가 부족한 탓에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에디슨 전자회사(지금의 GE)의 파리 지사에서 취업하게 된다. 범인은 때론 너무나 쉽게 눈에 띄는 법, 테슬라를 눈여겨 보고 있던 지사 책임자 찰스 베처러는 테슬라에게 본사 출동을 지시한다(발령 아니다. 출동이다). 어디 그냥 보내겠는가, 자신의 친필 추천서와 함께 말이다.



‘HI CEO. 세상엔 두 명의 천재가 있습니다. 하나는 졸라 존경해 마지않는 사장님이시구요. 하나는 사장님 앞에 서 있지 말입니다. YOU KNOW!’



약빨 지대로인 추천서를 들고 갔으니 본사취업 성공. 곧바로 에디슨은 자신의 직류 발전기를 효과적으로 개선하라 지시한다. 당시 에디슨의 직류와 웨스팅하우스일렉트로닉스(이하 웨스팅하우스)의 교류가 전기시장 정복을 위한 전투를 슬슬 벌이고 있었던 터, 에디슨은 지사장이 천재라 일컬은 테슬라에게 제법 중요한 미션을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테슬라는 직류를 부정하고 교류를 믿었다. 실제로 파리지사에 근무하면서 연구했던 것도 바로 교류였다. 더구나 에디슨은 천재 발명가임과 동시에 유능한 인재를 데려다 단물을 ‘쪽쪽’ 빨아 묵고 내치는 악덕 기업주가 아니었던가. 그로 인해 상황은 엉뚱하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위인전과 실제가 다른 확실한 예.‘토머스 에디슨’



직류와 교류가 벌인 전류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알다시피 교류다. 비용, 실용적이면 모두에서 교류가 앞선 것이다. 그러나 포맷을 선점하기 위해 합리적이어야 할 게임의 진행은 상당히 더뤼 했다. 더뤼한 진영은 우리가 발명왕이라 일컫는 에디슨의 직류진영이었다.

1.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직류발전기를 개선하면 5만 불의 인쉔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2. 테슬라는 성공적으로 직류발전기를 개선한다. 그리고 말한다 ‘기브 미 인쉔티브’

3. 에디슨은 ‘미국식 유머를 모르다니, 노 인센튀브다. 쉐이야’라며 쌩깐다.

4. 빈정상한 테슬라가 곧바로 퇴사한다.

5. 테슬라가 퇴사하자 곧바로 투자자들이 붙는다.

6. 테슬라 전기회사가 만들어진다.

7. 교류를 지지하던 웨스팅하우스가 테슬라와 붙는다.

8. 에디슨은 경쟁관계에 있던 웨스팅하우스가 테슬라와 붙자 격노한다.

9. 승기는 슬슬 테슬라+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쪽으로 기운다.

이렇게 되자 에디슨은 직류의 우수함이라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닌 교류가 좆도 아니라는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게 된다.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가 옛정을 생각해 제안한 일종의 연합기업 구성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자사 엔지니어들의 교류전환 요구를 묵살했다. 대신 뉴욕의 개와 고양이들을 사들여 교류발전기에 놓고 죽이는 실험을 지시한다. 사람들에게 ‘교류는 위험하다’는 공포를 심는 전형적인 네거티브를 시도한 것이다, 실험을 주도한 해롤드 브라운은 순신간에 듣보잡 탑에 랭크되며 주목 받게 된다.


 
순식간에 1위 등극한 해롤드 브라운



더럽게 돌아가는 꼬라지를 확인한 웨스팅하우스는 뉴욕 타임즈등에 항의서한을 전달했고, 테슬라는 사람들 앞에서 교류를 직접 만지는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안정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더뤼한 전류전쟁의 불똥은 엄한대로 튀고야 만다.

당시 뉴욕주는 교수형이 현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새로운 사형방법을 고민하고 있었고, 때마침 듣보잡 해롤드의 실험을 전해들은 뉴욕주위원회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사형방식으로 전기의자를 에디슨에게 제안한다. 물론 전류의 속도가 뇌가 반응하는 속도보다 70배 정도 빠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다는 참으로 휴머니즘한 이유를 함께 들면서 말이다. 에디슨은 ‘옳타쿠나’ 곧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조지 웨스팅하우스



듣보잡 해롤드는 에디슨의 지시에 따라 교류 발전기를 이용한 전기의자를 개발한다. 여기서 골 때리는 건 에디슨의 계획이다. 개발한 다음. 웨스팅하우스에서 교류발전기를 사다가 완성한 후 이 사형방법의 이름을 Electricution 혹은 To Westinghouse 명명한 뒤 ‘교류’는 결국 사람을 죽이는데나 쓰이는 위험한 것이라 대중들에게 공포을 박는 것으로 자신의 뻘짓을 완성하고자 했다. 더 골 때리는 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 당연 웨스팅하우스는 전기의자용 교류발전기 발주에 ‘조까’로 응수했고, 할 수 없이 에디슨의 자신의 직류발전기를 전기의자에 갖다 꽂았다. 세르베투스를 잡아다 태워 죽인 칼뱅의 삽질에 버금가는 삽질을 발명가 에디슨이 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전기의자는 완성되었다.

전기의자의 비극적 첫손님은 ‘도끼 살인마’란 닉을 가진 윌리엄 켐러였다. 그는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인을 살해한 혐의로 1889년 3월 28일 사형을 선고 받았다. 뉴욕주가 전기의자를 도입한 직후였다. 1890년 8월 6일 뉴욕주 오번교도소, 사형집행관이 켐러를 전기의자에 앉혔다. 8개의 가죽 끈으로 몸과 의자를 고정시킨 후 사형수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운다. 다리와 머리의 털을 잘라낸 후 전극을 붙이고 전원을 연결한다. 집행관들은 입회인들의 보는 앞에서 전원을 올렸다. 1,000볼트였다. 켐러는 고통 받았지만 죽지 않았다. 살이 타들어가고 연기가 났다. 켐러가 죽지 않을 것을 확인한 집행관들이 2,000볼트의 전기를 넣었다. 켐러는 고통을 몸을 뒤틀었고, 입회자들도 살이 타들어가는 광경과 냄새에 구토를 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형 중 하나가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사형수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이유는 사형수가 아닌 입회자들을 배려한 것이다.




 
당시 처형장면을 묘사한 처형직후 8월 7일자 뉴욕해럴드 기사.



에디슨과 테슬라+웨스팅하우스가 벌인 어이상실판 전류전쟁 탓에, 엄한 윌리엄 켐러가 고통스럽게 처형당했던 그 시절, 미쿡은 실로 엄청난 팽창을 이루는 중이었다. 미쿡이 세계1등국이 되는 데에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 1차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 딱 53년 걸렸다. 53년 동안 미쿡은 남북전쟁으로 피폐해진 농업중심국에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산업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철도의 보급과 철강사업, 유전개발 등이 동시에, 게다가 화끈하게 진행되었고, 거기에 에디슨과 테슬라와 같은 이들에 의한 발명품, 생산에 필요한 전력 보급등의 문제가 해결, 개선된 결과였다. 그러나 그러한 화려한 발전 뒤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크 트웨인과 C.D. 워너가 그 시대를 다룬 책의 제목을 ‘황금빛 시대’ The Gilded Age라 붙였듯이 말이다.

황금빛 시대를 대표한 몇몇이 있다. 민간인 귀족으로 국가도 건드리지 못한 몇몇 말이다. 부당이득과 뇌물을 통해 뉴욕센트럴 철도를 건설한 윌리엄 밴더빌트, 신탁증서 발행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 거대기업을 독점을 막는 법을 피해 막강한 독점을 행사한 존 D. 록펠러, 노동자 파업이 일어나자 전직원을 해고하는 등, 정상적인 조합도 인정하지 않은 철강왕 카네기. 그리고 돈독이 제대로 오른 J.P.모건 시니어가 있다.

J.P. 모건 시니어는 젊은 시절 남북전쟁 때 징집되었으나 ‘행방불명’이 아닌 300달러를 주고 대역을 고용하여 징집을 불법적으로 회피한다. ‘대역’ 모건 선생이 탄생한 것이다. 징집을 거부한 그는 전쟁통에 자금을 모금해 장난을 친다.

1. 구식 카빈총을 3달러 50센트에 산다.

2.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11달러 50센트에 사들이게 한다.

3. 총을 사~알짝 개조해 22달러에 슬슬 팔기 시작한다.

4. 정부가 그 총을 원래 가격의 여섯 배를 주고 왕창 사들인다.

5. 정부는 돈지랄을 하고 ‘대역’ 모건 선생은 돈을 쓸어 담는다.

이렇게…

‘대역’ 모건 선생과 테슬라와 얽힌 일화가 있다. 테슬라의 기술을 알아본 ‘대역’ 모건 선생이 테슬라에게 투자한 것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테슬라는 수려한 외모는 물론이요, 과학,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해박함을 지닌 팔방미인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냐고? ‘대역’ 모건 선생의 딸래미가 테슬라에게 ‘뿅’간 것이다. ‘대역’ 모건 선생은 자신의 딸이 한낱 기술자 나부랭이와 어울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테슬라의 성격도 괴팍하기로 치면 에디슨과 쌤쌤에 가까웠다. 결국 지원했던 무선송신탑 개발이 끝나자 지원을 중지했다. 당연 관계 또한 드럽게 끝났다.


 
‘문어발’ 모건 선생. 혹은 ‘대역’ 모건 선생



‘대역’ 모건 선생은 국가를 상대로 돈놀이를 할 만큼 통이 큰 분이셨다. 미국정부가 자신에게 돈을 꿔달라고 하자 담보가 부족하다며 호탕하게 거절했다. 결국 국채를 받고 금을 넘기는 방식으로 대출. 국채는 즉시 되팔아 차액을 남겨 쳐묵한다. 당시 미쿡은 이런 장사꾼들이, 전 직원을 해고하고, 항의하는 근로자 수십 명이 죽어나가도, 주방위군 7천 명을 직원 대신 현장에 투입해버리고 마는 기업꾼들에 점령 당한 차가운 대륙일 뿐이었다.

이런 시대에 윌리엄 켐러의 고통스런 죽음이 시대적 부채로 각인될 리 없다. 에디슨과 테슬라 + 웨스팅하우스의 전류전쟁이 켐러의 고통스런 죽음으로 멈춰질 리도 없었다. 결국 시카고 만국박람회 입찰을 테슬라 + 웨스팅하우스가 따내어, 성공적으로 치루자, 나이아가라 발전소 수주도 결국 그들의 몫으로 돌아가면서, 그제야 전류전쟁은 교류의 승리로 끝났다.

이렇게 미쿡이 초강국으로 팽창하는 동안 소수는 초대박 졸부에 등극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노동자로 전락했다. 철로가 깔릴 때마다, 교각이 하나 생길 때마다, 발전소가 하나 생길 때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윌리엄 켐러가 죽은 1890년 그해 겨울 운디드니(wounded knee) 야영장에선 무장해제 당한 인디언 300여 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그렇게 대륙의 원주인인 인디언 토벌은 그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몇 명이나 죽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늙어 그때를 돌이켜보니 살육 당한 부녀자들이 험난한 협곡을 따라 널브러져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 광경을 내 젊은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피투성이 진흙탕에 죽은 사람 말고 죽은 다른 것도 눈에 묻혀 있었다. 한 종족의 꿈이 사라져간 것이다.

존 G. 네이하트의 ‘검은 사슴 설화 Black Elk Speak’ 중 현장에 있었던 주술사 블랙 엘크의 말. 불과 백 년 전 윌리엄 켐러가 전기의자에 앉은 그때 미쿡의 모습이다.




 
당시 운디드니를 묘사한 Fredericc Reminton의 작품.



우주와의 통신이란 다소 오덕스런 목표를 향해 전기에 입문한 테슬라는 윌리엄 켐러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차라리 도끼로 때려 죽이지’하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에디슨이 뭐라 반응했는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기의자를 통해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게 한 방 먹이려던 등신 같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10대 시절에 잃은 청력으로 인해 웬만한 말은 잘 들리지 않은, 신체적 특징 때문인지, 자기 공장을 불타오르는 것에 감탄해 아부지에게 ‘언능 마실 오셔서 구경하라’며 전화를 건 기인적 기질 때문인지 알려진 바는 없다.

윌리엄 켐러는 그렇게 미쿡이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던 시기에, 그것도 미쿡의 한 복판인 뉴욕의 오번 교도소에서 새 시대에 걸맞은 졸라 일렉트로닉하고 고통스런 방법으로 죽어갔다.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가 충격을 받긴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1915년 에디슨과 테슬라는 함께 노벨상 공동수상 후보에 지명되어 수상이 유력했으나 받지 못했다.

혹자는 에디슨만 상금 2만 달러가 돌아가는 것이 싫어, ‘조까’라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테슬라만 에디슨이 너무 싫어 ‘에디슨 조까’라고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둘 다 서로 ‘조까’라고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수상 필요조건인 논문을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아 당연한 결과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10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한 발명왕 에디슨은 1931년 세상을 떴고, 당시 미국인들은 1분 동안 모든 등을 끔으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272개의 특허를 출원한 니콜라 테슬라는 1943년 맨하탄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맨허튼 호텔에서 테슬라의 시신이 발견된 1943년 1월 8일, FBI는 테슬라의 모든 자료를 압수한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발명과 연구내용이 서구 공산당에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당시 테슬라가 기후를 조정하는 시스템, 공간이동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수호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은 FBI는 정확인 10년 뒤인 1953년 6월 19일, 윌리엄 켐러가 감전되어 죽은 오번 교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름도 상큼한 싱싱교도소(singsing prison)의 전기의자에 로젠버그 부부를 앉힌다. 소련에 핵무기 기술을 빼돌렸다는 이유였다.




 
이곳이 바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싱싱교도소.



To Be Continued…

본문에 등장하는 미국사 일부 내용들은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사’와 기류 마사오의 ‘세계사’를 참고, 인용했다. 지난 기사에서 페르디난드 막시밀리안의 예고했으나,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게 좋을 듯 해 바꿨다. 혹 기다렸던 독자제위분덜이 계실지 모르겠다. 사과는 언젠가 ‘고료’가 나오면 그때 가서 ‘고려’해 보는 것으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