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좌충우돌세계사] 참수 혹은 린치 - 참수 '신돈'





우리는 지난 시간, 타 죽은 세르베투스, 전기의자에 앉자 세상과 안녕한 윌리엄 켐러와, 로젠버그 부부의 최후의 순간을 함께 했다. 더불어 그들의 최후의 순간에 작동한 권력일 수 있는 그 무언가의 적나라한 모습도 함께 확인했다. 헌데 확인하면 뭐하나. 간 사람들은 간 사람들일 뿐이다. 이 연재에 이젠 역사가 되어버린 그들의 처형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시금석으로 삼자는 거창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더욱이 그때 작용한 권력과 현재의 권력 사이의 페어링 지점을 쑤시고 찾아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옛날 얘기일 뿐이다. 그저 재미지게 옛날 얘길 함 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얘기한다는 것, 이게 때론 존나 흥미롭다. 정확하게 존재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등장하며 갈라지기 시작하는 그 좌표의 지점이 상당히 꼴릿하기 때문이다. 파열은 곧 에너지를 의미하기도 하니깐…

자. 다시 한번 과거로 떠나보자. 현실이 피로해서가 아니라, 그냥 좀 심심하니깐, 연재할 때가 되었으니깐. 편집 부국장이 빨리 써내라니깐… 유럽을 시작으로 북아메리카 함 찍었으니 이번엔 고려 말 한반도, 우리땅으로 가자. 사실 고려가 망하고 난 뒤에나 고려말인 거지, 당시 사람들에겐 그저 고려였을 뿐이다. 사대부들에겐 ‘요승’으로 불린, 동시에 노비들에겐 ‘성인’으로 불렸던, 신돈에게나, 그를 멘토로 모시다 ‘한 칼 받으실레예’로 쿨하게 보내버린 공민왕에게나 그땐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려시대’였을 뿐이다.

그러고보믄 '정권말'인데도 대책없는 지금은 도대체 뭔지 참...



1.

1371년 수원, 아무리 중이었어도 한때 민중의 지지를 한껏 받은 최고권력자였던 그였다. 게다가 중이었어도 고기를 비롯한 산해진미 모두를 두루두루 맛보았던 미식가 중의 미식가였던 그다. 완벽히 숙성시킨 한우 1등급 스테이크를 내놓은 쉐프도 간간히 그에게 핀잔을 듣곤 했다. 그런 그가 유배라니, 그 개고생을 했는데, 그것도 토속음식마저 화려하지 않은 수원에 유배라니… 그저 애초 중이었던 그가 중으로 돌아왔으면 되었을 것을, 이미 모든 것을 맛본 그가 다시 사바세계의 욕망에서 자유로운 불자로 돌아온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불평도 모두 사바세계에 숨 붙이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 그는 본능적으로 얼마 남지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1047년 8월, 고려 문종왕은 이렇게 말했더랬다.

‘사람의 목숨은 귀중한 것이여. 한번 가믄 다시 돌아올 수 없당께. 사형수를 처리할 때 3번씩 거듭 보고하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억울함을 있을까 염려 되부러. 그러니 신중하게 처리하자고…’  (고려사 형법지)

그러니까 고려시대 사형을 처리하려면 삼복제를 거쳐야 했다. 초심, 재심, 삼심을 거쳐 확정되어야야만 사형의 집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손창민과 정보석. 아니 신돈과 공민왕


그러나 반역의 수괴로 지목된 신돈은 구체적인 물증이 없음에도, 삼복은 개뿔, 신속히 수원으로 압송되었다. 최초 수괴로 지목된 뒤 3일 후의 일이었다. 신돈은 자신이 수괴로 지목되었음을 알고는 압송되기까지의 며칠동안 차분히 최후진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라리 초심이 열리기 전에 자신의 주치의에게 말해 그동안 미뤄왔던 사랑니 발치건을 이유로 초심을 미뤄볼까도 생각했지만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스승처럼 떠받든 공민왕에 대한 믿음이 살짝 남아있었다. 자신의 생애를 정리해줄 자유기고가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격적으로 압송이 결정되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직감했다. 더구나 귀빈 압송용 리무달구지가 아닌 전륜구동 방식의 불편한 일반 달구지라니... 밖과 안이 너무나도 다른 그안에서 그는 떠올렸다. 고작 노비의 아들이었던 그 자신을…



2.

편조라는 SCV가 있었다. 그는 경상도 창녕 화왕산에 자리잡은 커맨드센터 ‘옥천사’ 소속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믄 편조의 소유권은 옥천사에 있었다. 어머니가 옥천사 소유의 노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인근의 영산 유지였지만 소용없었다. 부모 둘 중 하나라도 노비면 자식도 노비였다. 게다 자식의 소유권은 어미의 소유권자에게 있었다. 그렇게 편조는 옥천사의 소유였다. SCV의 역할은 뻔한 것이다. 커맨드센터의 지시에 따라 ‘굿 투 고’(Good To Go)해서 ‘좝 피니쉬’(Job Finish)하믄 그만. 일개 노비였던 어린 편조의 삶이 그러했다. 인생사 일장춘몽이라 하였던가. 노비 편조는 훗날 공민왕의 지지와 믿음으로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신돈辛旽이 된다. 그러나 결국 공민왕에 의해 처형당한다. 한편으론 화려하지만 참으로 싱거운 개인사. 어쨋든 그가 처형당한 뒤 커맨드센터 ‘옥천사’도 파괴된다. 파괴된 옥천사에서 보여지듯 편조에 관한 자료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없는 자료 바탕으로 정리한 편조의 유년기는 아래와 같다.

‘노비 편조는 그럭저럭 청년이 되었다.’

고려는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에 대한 조세징수권을 공무원들에게 위임했다. 부패없는 청렴한 사회를 지향했던 공무원들은 ‘조세징수권 양도에 관한 법률’이 고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소리없는 환호를 지르고 지랄들을 했다. 곧바로 공무원들은 청렴하고, 강직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우선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려 농사에 필요한 모든 원자재의 가격을 올린 뒤, 원자재 값이 오른데다, 생산량마져 줄은 양인들의 연체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되자, 공시지가 조작을 통해 연체된 조세대신 그들이 토지를 헐값에 상납받는 등의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토지를 늘려갔다. 때에 따라 위장전입등의 새로운 방법들을 시전하기도 했다. 종종 발각되는 경우 과거급제를 위한 자식사랑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둘러대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조세의 의무를 강력하게 요청함과 동시에 자신들은 다양한 탈세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실행했다. 탈세로 인한 조세의 부담과 고통은 고대로 백성에게 전가된다. 완벽에 가까운 20:80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조까튼 현실을 청년 노비 편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이렇게 흉흉한 시대일수록 백성들의 위로 받고 싶은 기대가 극도에 달한다는 것도 감각적으로 캐치해낼줄 아는 센스있고, 총명한 청년이었다. 글을 읽지 못했지만 독경을 말하고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베이시스트 빌리 시안(Billy Sheehan)도 악보를 읽지 못하지 않았던가. 청년 편조에게도 빌리 시안의 천부적인 능력과 같은 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외롭고 지친 시대의 백성들, 그는 원나라 유학 중에 터득한 카마수트라를 옵션으로 한 명랑 포교를 통한 민생 행보를 해나갔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일찍 깨우치고 정진했던 것이다. 주로 주요지역의 5일장을 타겟으로 했고, 악수와 주전부리 흡입 등의 퍼포먼스를 맘껏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백성들의 명랑법사가 되자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왕실의 외척이었던 김원명이다. 편조는 자신을 따르는 김원명과 곧바로 맞팔을 맺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원명은 느닷없이 편조에게 ‘궁 나들이나 함 합세다’는 멘션을 날린다. 편조는 흥쾌히 ‘콜’ 한다.

얼마후...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공민왕은 급히 참모를 불렀다.

‘야. 궁 앞 편의점가서 로또 하나 사와. 롸잇 나우. 자동으로 만냥.  고고고. 무브. 무브’

순식간의 튀어가는 참모의 모습은 흡사 제로백 4초대의 포르쉐를 연상케 했다. 폭주하는 참모의 모습에 의아한 공민왕의 어머니 명덕태후가 공민왕에게 다가와 연유를 묻자 공민왕이 답하길.

‘맘. 어제 드림에 갑자기 어떤 킬러가 나와서 나이프로 날 막 쑤시는데, 갑자기 소림사 스킨헤드가 등장해서 날 구해줬어요. 유노.’

이를 들은 명덕태후는 ‘얘가 얼마나 외로우면 스킨헤드 꿈을 다 꿀까. 혹 취향이 바뀐 건가’라며 생각하지만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 공민왕은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며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창 밖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공민왕의 눈에 들어왔다.

‘오 마이 갓. 맘. 스킨헤드, 롸잇 히어’

공민왕의 눈에 들어온 이는 다름아닌 김원명과 함께 나들이 온 편조였다. 드디어 왕을 만난 것이다. 외롭고 지친 왕은 편조에게 한눈에 반했다. 허나 공민왕 주변의 왕차관들은 갑자기 등장한 스킨헤드를 수위 높게 경계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편조는 지금은 때가 아님을 직감하고 평소 자신의 롤모델로 여긴 원효대사처럼 민중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민심 행보 시즌2가 시작된 것이다. 편조는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3.

공민왕은 늘 외로웠다. 왕좌의 게임에서 그는 어머니가 몽골공주가 아니라는 치명적인 핸디캡때문에 조카들에게 카운터 펀치를 두차례 후려 맞았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자신을 불안해하는 원나라의 후광을 통해 패자 부활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원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시절, 극적으로 위왕의 딸인 노국대장공주와 정략 결혼에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원의 힘을 업고 왕좌의 게임 에 다시 도전한다. 화끈하게 컴백한 그는 곧바로 현충원, 아니 경령전(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참배 후 인수위를 조직한다. 얼마 후 강화도로 위배된 13살의 충정왕이 독살되고 모든 권력은 고스란히 공민왕과 인수위에 전달된다.

공민왕은 왕위를 얻었지만, 원의 간섭과,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견제, 자신의 세력에 대한 불안, 조카 충정왕을 재낀 것에 대한 죄책감등을 짊어진 채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민왕의 권력투쟁에 기존의 기득권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개혁적 마인드가 일부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공민왕이 스카우터를 통해 재벌개혁과 소득분재, 상식적인 인재 등용 등의 개혁정책에 능통한 이색을 영입, 계약을 서두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력투쟁, 반란, 진압, 원의 보이콧,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수도 개경을 잃을 뻔 하는 등 편할 날 없는 과정들이 끊임없이 공민왕을 괴롭혔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안과 분노, 흥분과 우울등에 시달리면서 그의 성적 능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스 개경 출신 후궁의 S라인을 보믄서 고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싶다가도, 자신의 잡아먹으려는 원나라 세력과, 개경을 치고 들어왔던 홍건적의 샛누런 치아가 떠오르며 사그라들기 일수 였다. 원기가 부족하니 시련과 격변의 시기에도 늘 곁을 지켜준 노국공주의 침소에 드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왕자 생산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원과의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탓에 대원무역이 원할하지 않아 비아그라의 복용도 쉽지 않았다. 불안과 무기력, 욕구 불만 등으로 인해 그는 난폭해지기 시작한다. 지방에서 민생 행보 시즌2를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던 편조는 이러한 공민왕의 사정을 전해 듣는다. 재래시장을 방문 중이던 편조는 때가 왔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오뎅을 한입 베어 물고는 출사표를 던진다.



재래시장에 맛보는 오뎅의 맛.


신돈은 공민왕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공민왕과 주변부의 권력 관계 맛을 확실히 봤다. 그리고 공민왕 주변부의 권력들이 자신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공민왕은 그때보다 더욱 지쳐 있었고, 편조는 왕을 배경으로 뭔가를 시작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한 주변의 모든 정황을 고려해볼 때 이번에야 말로 편조는 폴포지션에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만남에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머리 속으로 되내였다.

‘스텝 바이 스텝’
‘한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거슨 아니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공민왕은 기꺼이 편조를 맞이했다. 맑고 한가로운 거사라는 뜻의 청한거사라는 호칭을 하사하고 궁의 중심부에 위치한 외빈용 VIP 스위트룸을 내주며 편히 궁에 머무를 수 있게 했다. 편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차분히 한 스텝씩 밟아 나갔다. 현란한 포교활동을 통해 왕의 측근을 한둘씩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포섭된 한 신도로부터 노비를 한명 선물 받는다. 아리따운 아가씨. 편조는 그녀에게 푹빠져 ‘얼레리 꼴레리’, 편조는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하지만 반야는 공민왕과도 ‘얼레리 꼴레리’. 한참동안 무기력했던 공민왕은 반야를 통해 슈퍼 파워 업. 1364년 노국공주가 여름에, 반야가 가을에 임신을 한다. 반야의 임신사실을 모른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태교에 만전을 기했지만, 결혼 15년 만에 아이를 가진 노국공주는 결국 출산도중 숨을 거둔다. 다들 지들 권력 타령만 하는 이들 사이에 사람으로 공민왕 옆을 지켜주었던 유일한 여인. 공민왕의 허탈과 슬픔은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얼마가 지난 뒤 안정을 되찾은 공민왕에게 편조는 반야의 순산소식을 전했다. 노국공주의 빈자리는 민생 행보를 통해 터득한 친서민적인 편조의 설법과 반야와 왕자 모니노(牟尼奴, 석가모니를 뜻함, 훗날 우왕)가 대신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공민왕, 본격적으로 권력강화를 위한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공민왕은 편조를 스승으로.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개혁의 수장으로, 반대파 숙청의 지휘자로 임명한다. 이에 공민왕을 옆에서 지켜 봐왔던 편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해하지 않겠다는 각서와 친필사인, 공증을 요구했다. 혹여나 생길지 모를 최악의 경우 들이밀 수 있는 ‘까방권’이 필요했던 것이다. 공민왕은 기분이 졸라 상했다. 머리 기른 중놈이 왕에게 각서를 요구하다니, 하지만 공민왕의 권력을 위해서는 편조가, 편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공민왕이, 서로가 서로를 참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공민왕은 앉은 자리에서 즉시 작성, 사인, 공증까지 논스탑으로 처리. 드디어 공민왕, 편조라는 파워 키스톤콤비가 탄생하게 된다.



4.

공민왕, 편조 이 파워 키스톤콤비의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최영을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최영이 누구냐. 밖으로는 외적을 후려패고, 안으로는 왕차관 조일신등의 분란을 제거, 게가다 홍건적에게 개경을 빼앗이고 공민왕이 튄 상황에서, 개경탈환에 혁혁한 공을 세운이도 바로 최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사실 이말은 그의 아버지 최원직의 유언이었다) 청렴의 상징이기도 했다. 군에게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키스톤콤비는 그를 날려버려야 군을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군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놔야 쾌적하고 원할한 숙청을 진행할 수 있을거란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최영을 계림(경주)로 보낸 뒤 편조는 이제 사바세계를 떠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이름은 돈旽으로 개명한다. 성은 신辛이요, 이름은 돈旽으로, 이렇게 편조는 사바세계의 최고권력자 신돈辛旽이 되어 갔다.



신돈, 공민왕. 아니 안치홍, 김선빈.


편조가 신돈이 되었으나 공민왕은 공민왕이었다. 그는 물러난 것이 아니라 포지션을 살짝 바꾼 것 뿐이었다. 신돈에게 모든 걸 맡겨 놓았지만, 모든걸 보류할 수 있는 권력 또한 역시 공민왕에게 있었다. 그 어느 정파에도 속해 있지 않았던 신돈이 과도한 권력을 누리고 있던 권문세족들을 숙청하는 모습을 공민왕은 지켜보고 있었다. 신돈이 날라다니는 덕분에 그에겐 좀더 많은 여가가 주어졌다. 반야와 아들 모니노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정감을 찾으니 왕자가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노무 안타까움을 해소하고자 몇 명의 왕비를 추가로 궁에 들였다. 젊고 아리따운 왕비들을 연이어 상대하기 힘들었지만 혼자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불안하고, 우울했던 날들에 비하면 ‘행복한 나날들’ 그 자체였다. 그렇게 생긴 긍정적인 마인드는 다양한 성적호기심을 부추겼다. 그 호기심은 언양 출신 쾌남 김흥경과의 연애로 이어진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신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돈은 부처 말씀은 물론이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육체의 설법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인은 물론이요, 산해진미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기가 땡기면 고기를 쳐묵하고, 술이 당기면 술 한잔 들이켰다. 청탁을 목적으로 몸을 상납하는 세도가의 부인들을 마다하지 않았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 청탁들은 보좌관들을 통해 민원 처리하듯 해결해주기도 했다. 의복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늘 빈티지 핏을 고수했지만, 궁의 출입이 원활한 집무실을 따로 소유해, 거처 하면서 국정개혁과제를 몰두하기도 했다.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무려 600년 전에 신돈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완벽한 자유에 몸이 된 신돈은 드디어 숨겨둔 히든카드를 꺼내 든다.




5.

신돈발 개혁의 핵심은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를 통해 토지와 노비의 변정(변별하고 옳게 결정), 기득권세력들에게 편중된 토지를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전민변정도감’의 설치 후 신돈은 스스로 결정을 주관하는 판사가 되었다. 빼앗긴 땅을 돌려주기 시작했고, 땅을 빼앗겨 양인에서 노비로 전락한 이들의 신분을 복구해주었다. 사실 노예출신 신돈은 무엇보다 노예제 자체를 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노예제를 고려사회의 근간이기도 했다. 그 근간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모든 개혁이 올 스톱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예제는 그대로 존속되었으나 변정하는 과정에서 신돈은 노비의 입장에 섰다. 일부 노비가 해방되었고, 땅을 잃었던 양민들이 제 땅을 되찾게 되었다. 왕도 짜증나고 눈치 보여 하지 못했던 일을 신돈이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 거침없어 질수록 슬슬 신돈의 반대세력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신돈은 더욱 강력한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던가. 이 과정에서 신돈과 공민왕은 틀어지게 되고 만다.

신돈은 공민왕에게 지방자치를 관리, 감독하는 사심관제도의 부활을 요청했다. 더불어 사심관의 오야봉인 ‘5도 도사심관’이 되고자 했다. 사심관제도는 공민왕의 아버지인 충숙왕이 사심관이 지방을 과도하게 소유, 지배하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폐지했던 제도였다. 신돈은 여전히 부실했던 자신이 세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세력을 장악하고 싶어했고, 이를 공민왕이 모를 리 없었다. 이에 공민왕은 신돈의 요청을 반려, 또 반려했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 지방 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신하 한 놈아가 신돈에게 먼저 브리핑 후 자신에게 온 것을 알고는 1년 감봉의 징계를 내린 후에 정사복귀를 선언한다. 신돈과의 예정된 균열은 그렇게 시작된다.

기득권세력들에겐 왕과 나란히 앉자 자신들을 숙청하고, 수시로 왕에게 ‘천도’(수도이전)나 함 하자고 옆구리 쑤시는 신돈이 괴벨스처럼 보였다. 공민왕이 복귀를 선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신돈 보내기’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프로젝트는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신돈이 그의 몇몇 무리들과 구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정황을 꾸미는 것이었다. 몇 회에 걸쳐 구데타에 대한 실명제보가 왕에게 핫라인을 통해 들어갔고, 제보에 기명된 몇몇 무리들이 영장 없이 긴급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들은 일반 경찰 조사과가 아닌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미란다 원칙이고 묵비권이고 나발이고 간에 소용없었다. 곧바로 추국부터 시작되었다. 모진 추국에 일부는 사바세계와 안녕을 고했고, 일부는 스스로를 구데타세력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돈마저 긴급 체포, 곧바로 수원으로 긴급 압송된다. 그렇게 신돈은 권력의 정점에서 밑바닥까지 정확히 마하 3의 속도로 곤두박질 쳤다.



6.

신돈이 압송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공민왕은 신하들에게 신돈의 처리에 관련한 상소를 올리라 지시했다. 신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수원에서의 유배생활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스티브잡스의 전기를 읽으며 자신 또한 그렇게 화려하게 컴백하겠노라 다짐 또 다짐했다. 그리고 그에겐 공민왕의 친필사인은 물론 공증까지 마친 ‘까방권’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다 읽은 어느날, 왕이 보낸 사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긴머리를 흩날리며 문 밖으로 뛰처 나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복귀용 세단형 가마가 아닌, 자신의 목을 기다리는 큰 칼이었다.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노비였던 어린 시절, 민생 행보하며 맛보았던 오뎅들, 자신의 취향에 너무나 잘 맞춰주었던 쉐프들, 그리고 몸을 나누었던 여인들, 여인들 중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반야, 그리고 왕… 공민왕…



고우영이 그린 신돈


그래도 내 덕에 땅을 되찾은 양민들, 노비에서 해방된 이들 때문에 저승길로 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자신이 재건한 성균관, 자신이 학관의 자리에 앉힌 정몽주, 정도전 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이라면 내 생애를 제대로 후대에 정직하게 전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차, 이미 칼은 목에 와 닿아 있었다. 설사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몽주와 정도전 모두 신돈에 의해 쫓겨나기도, 신돈의 정권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신돈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대다수의 권문세족들과, 공민왕의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7.

신돈이 목이 떨어진 1371년으로부터 정확히 21년 뒤, 고려를 대표하는 충신이자 성리학의 조종이라 일컫는 정몽주는 이방원이 고용한 킬러와 선죽교에서 마주하게 된다.


To Be Continued…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경축] 니덜만을 위한 세상




이봉원, 아니 이봉화란 분이 계셔요. 가카가 청계천을 막 봉헌하려고 서울시에서 졸라 십장역할하고 계실 때 함께 서울시에 계시던 분이에요. 그러다 가카가 진짜 가카가 되시믄서 인수위에 들어가셨죠. 강남에 집이 3채 정도 있으시대요. 뭐 그정도는 있어야 인수위에도 들어가고 하는거죠. 당연한 거에요. 결국 이봉화님은 보건복지부 차관에 임명되요그러고보믄 사람 팔자 한순간이에요그죠
차관이면 연봉만 9915만원정도 될거에요. 2011년에 가카께서 5.1%정도 인상해주신 거거든요. 이거 아시죠. 조현오 경찰청장이 '월급이 차관급밖에 안된다.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졸라 부려먹는다'고 푸념했던 거 말이에요. 근데 뭐 누가 시켰나요. 다 지 스스로 그지랄 한거지. 안그래요.


봉화(烽火)가 아니라 '직불 이봉화 원장'

근데 사람 마음이 뭐 다 그런가봐요. 이분이 말이죠. 위장전입으로 농지를 매입한 뒤에 농사짓지도 않으믄서 진다고 막 허위로 서류를 작성, 신청해가지고 쌀직불금을 받아 처묵으려고 했던 거에요. 처음엔 아니다’ ‘남편이 귀농 준비하려고 했고, 실제 농사를 지으려 했다어쩌니 저쩌니 뻐팅기고 계셨더랬어요. 하도 어이없이 버팅기자 오죽하면 당시 보건복지부가족위 소속 백원우 의원이 이런 말까지 했더랬죠.

대한민국이 시방 권문세족의 나라인겨

저는 당시 이 멘트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권문세족이라고 할거까지야. 이 정도였죠. 사실 웃겼던 건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준표횽님의 멘트였어요.

노무현 정부때 직불금 타묵은 공무원들 졸라 많더라

이런 멘트들은 일종의 전통으로 보여요. 얼마전 중앙일보는 연일 터지는 가카의 측근비리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아냈더랬죠.

‘MB 측근 비리. 참여정부 데쟈뷰

이렇게 함께 하니깐 전통은 아름다운 것이죠. 암튼 결국 쌀 직불금허위로 신청한 게 사실로 들어났구요. 7개월만에 차관자리에서 스무뜨하게 미끄러지셨어요. 그게 2008 10월 일이에요. 이렇게 자리에서 쫓겨난 양반이 그 뒤로 뭐하셨는 줄 아세요. 1년 쉬시다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이라는 보건복지부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의 초대원장으로 떡 하니 컴백하세요. 어떤 분이 이렇게 반문하실지 모르겠어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사회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시 졸라 화려하게 컴백하지 않았습니까?’라고그런 반문은 하지 마셔요. 그건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논문과 문대성의 '복사' 논문과 비교하는 꼬라지와 쌤쌤인 거니깐요.


암튼 원장님은 무탈하게 지금까지 잘 지내오셨어요. 그러다 이번 총선전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신청하셨지요. 대부분 청와대 '오다'라고들 예상했죠. 비례대표가 되기 위해 쌀 직불금에대해 막 소명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분의 문제는 쌀 직불금 뿐만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원장으로 있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직원들에게 접대비를 강제로 모금하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후원을 직원들에게 요구한 것이 추가로 홀라당 뽀롱났어요. 결국 비례대표에서도 낙마하셨지요. 보건복지부 차관에서 미끄러지시면서 '본인과 가족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챙기고 한 치의 실수나 위법이 없도록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시기 바란다'고 말씀하신 분인데 말이에요. 아. 폼안나요. 쪽도 이런 개쪽이 없어요. 근데요 이분 지금도 원장님으로 잘 계세요. 한번 원장은 영원한 원장인거죠. 그제서야 다시금 백원우 의원의 말이 떠올랐어요


권문세족’. 

6-700년 전, 그러니까 고려말 실질적은 권력을 행사했던 그들 말이에요. 지들끼리 막 혼인해가믄서 세를 확장하고, 지들 토지만 시원하게 확장하고, 땅을 잃고, 갈데 없는 백성들은 노비가 되던, 되지던 말던, 지들만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던 그들 말이에요. 그럼 뭐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건가요. ‘MB정권 말, 고려말 데자뷰로 말이에요. 그래요. 지금도 누군가에겐 정말 평온한 세상일거에요.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세상이 그러했듯이요. 정말로


저는 얼마전 백분토론에 나오신 중앙일보 김진 논설우원을 보고 권문세족들의 세상이 떠올랐어요.사실 살짝 시민논객의 질문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저라믄 이렇게 질문하고 싶었거든요. ‘논설우원님아. 씨바 왜 니덜만 안불안하다고 떠드는 거에요. 검역 중단하믄, 수입중단하믄 좀 안되는 거예요. 뭐 똥꼬에서 털이라도 난답니까. 국민은 불안해하고, 미국은 감사하다고 하고 님은 닥치고 처묵으라고 하고, 니미 좀 불안하다고하믄 반MB투쟁이라고, 선동이라 그러고. 씨바 이래도 되는건가요? 요렇게 말이죠.






다들 보셨죠. 우리 우원님은 늘 시원시원한 게 좋더라구요. 저는 읽어보진 못했는데, 검역중단을 요구한 박근혜누님을 논설우원님께서 좀 까셨나봐요. 근데 왜 박근혜누님을 까죠. 누가 들으믄 박근혜누님이 불안해하는 국민들 편인 줄 알겠어요. 깔려면 정부를 까야죠. 왜냐구요. 좀 긴데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관련 한,미 기술 협의의 과정 및 협정 내요의 실태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함 살짝 디벼 보자구요.


"당시(2008 58일 국회 대정부질의) 총리께서는 본 위원이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 우리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수입중단조치 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라는 질의에 대해서도광우병은 건강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수입중단 조치를 할 것입니다’”, ‘국민에게 위협이 된다는 그런 유권해석, 기준 필요없이 광우병만 발생되면 무조건 수입중단 조치한다’, ‘확실하다고까지 답변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강기갑 의원 서면질의) 

“기억함.”(한승수 국무총리 서면답변)

 “지금도 이 같은 입장에 변함이 없으십니까?”(강기갑 의원 서면질의)

 “변함이 없음.”(한승수 국무총리 서면답변)


유권해석, 기준 필요없이 광우병만 발생되믄 무조건 수입중단 조치하겠다고 했죠. 이거요. 당시 촛불들면서 그나마 힘겹게 얻어낸 거에요. 하지만 수입중단은 커녕, 검역조차 중단하지 않았어요. 뭐 그말이 그말이지만 아무것도 없었죠. 생각해보면 가카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평온이 넘쳐나는 이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에요. 문득 반값 등록금에 대한 가카의 깨알 같은 반응이 떠올랐어요.






공약을 지키라는 많은 이들의 분노에 가카께서는 극강의 평온함을 보여주셨어요. 모든 걸 다해보신 가카께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걸어 본적이 없다며 모든 걸 다해본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남기시면서까지  친 거죠. 또 누군가는 반값 등록금 얘긴 한나라당에서 한 것이지 가카께서 공약으로 내건 게 아니라고 말해요. . 그렇군요. 가카의 말씀만이 진리인 거에요. 모든 걸 다 가카 허락받고 해야 해요. 그러고보니 세상은 너무나 평온해요. 가카가 기면 긴거고, 아니면 아닌 세상이거든요. 내곡동 사저 문제도 그래요 아니면 아닌거에요. 형님 비서 계좌에서 7억이 나와도 그냥 장롱 속에 있던 그냥 그건 거에요. 등록금도 낼만한 거에요. 전 서울시장했던 세훈이 형만 두 딸의 대학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했을 뿐이죠. 전 그 소식 듣고 세훈이 형이 연체동물인줄 알았어요.


이게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아시죠.


권문세족이 만들고 싶었던 세상은 권문세족을 위한 세상이었어요.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지요. 잠시나마 개혁적이었던 신돈이 어찌되었는지 아시죠. 그가 권문세족의 미움을 샀던 가장 큰 이유는 농토의 대부분의 차지한 권문세족으로 인해 백성들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그들의 토지를 백성에 나눠주려 했기 때문이에요. 미움을 산 신돈은 결국 사약 한뚝배기 하실레예가 되고 말았죠. 물론 신돈 자신이 저지른 스캔들도 있긴 했지만요.


지금 가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자신이 저지른 불법으로 차관에서 미끄러저도 준차관급 자리에 앉자 떵떵거릴 수 있는 그녀를 위한 세상일테구요. 지금의 대학 등록금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분들을 위한 세상일 테구요. 정치인의 장롱속 7억이 돼지저금통 속 7만원 정도로 취급되는 7억의 주인공을 위한 세상일 테구요. 전철요금이 500원이 인상되도 아무 문제 없는 고급휘발유 고객을 위한 세상일 테구요, J모씨를 위해 20억정도 써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재철씨를 위한 세상일 테구요. 아무리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도, 대기업들이 조건의 허술함을 노리고 내장, 소머리등을 수입해도 불안할리 없는 투뿔(++) 한우 매니아들을 위한 세상일 거에요


우리는 차분히 앉자서 그 질문만 해보면 되요.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말이에요. 저는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미끄러지면 조때구요. 있지도 자식들 등록금 생각하믄 마 한숨만 나오구요. 장롱 속엔 7억은 커녕 물먹는 하마새끼 몇마리 밖에 없구요. 경유값 오른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구요. 식당에서 나오는 소고기가 미국산 일까봐 조낸 불안해하는 사람이에요. 다행히 9호선은 타지 않아요. 그래도 저를 위한 세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죠.


이렇게 가카가 주신 평온한 시대에 우리만 난리가 났어요. 미국산 내장과 소머리등이 유럽에선 이미 특정위험물질로 규정되어 있는데, 우리와 비슷한 대만에선 내장 전체를 수입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평온하게 그것도 씨제이(CJ)프레시웨이, 대한제당, 대우인터내셔널, 한화, 현대종합상사 등 대기업을 통해 수천톤(t)을 들어왔어요. (13일자 한겨레 보도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32577.html) 그런데 정부 담당자들은 졸라 평온해요. 내장은 대장만 수입하고 있구요. 우족은 특정위험물질 아니구요. 머리는 광우병 위험성이 없는 볼살만 수입하고 있대요.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말래요. 난리가 난건 우리뿐이에요. 조중동은 친절하게 확인시켜 주죠. 이렇게.






함께해서 더욱 평온한 세친구.


한겨레에서 내장까지 수입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그날 조선일보에는 통합진보당의 폭력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중앙일보에는 해독성분을 가진 오리고기에 대한 찬양 고무가, 동아일보에는 미친쇠고기 반정부투쟁을 선동하는 북에 대한 불안이 있었을 뿐이에요.

나는 참 부러워요. 이렇게 니들만 평온한 게 말이에요. 우리만 맨날 치고 받고 이거 뭔 지랄인지 모르겠어요하지만 이 지랄통속에서도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가 감시해야 할 게 니들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알고 있었던 문제들이었어요. 창피하고 안타깝지만 마취없이 상처를 찢고 흉부를 드러내고, 고름을 짜내고 봉합하는 고통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그 사실을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 이렇게 힘들게 깨닫게 해준 몇몇 분들에게 감사해요. 이 난리에도 묵묵히 의원등록까지 마치신 훌륭한(?) 분들 포함해서요.

오늘은 깊이 잠들어야 겠어요. 오랜만에 우리들만 위한 꿈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한 꿈을 꿔봐야겠거든요. 우리 서로들 잠이나 처잔다고 욕하지들 말아요. 잠을 자야 꿈도 꾸는 법이잖아요. 그러고보니 이 지랄 같은 상황 속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잠깐 동안의 단잠일지도 모르겠어요. 한숨 자고 봐요. 안뇽



사족.

도대체 뭘 믿고 먹어야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을 건 님들 후각 밖에는 없내요. 님들 콧구녕에 대한민국의 검역의 미래를 맡겨봅니다. 음... 스멜...





2012년 5월 3일 목요일

진격의 진보.



총선이 끝난지 어느덧 3주가 흘렀다. 여전히 슬프고 답답하다. 패배라도 그렇고, 선방한 것이라도 그렇고, 이긴것이라고해도 그렇다. 갈길을 멀어보이고, 힘은 들고, 표지판도 없고,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처가 있으믄 '힐링'이 있는 법.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죄다 멘붕이면 소는 누가 키우냐. 소는...'

미안. 잘못 올렸다. 햇갈렸다. 사실은 이분.





우리. 슬프고 힘들땐 이분의 트윗을 보자. 없던 당위가 막 생기믄서, 의지와 용기가 용솟음 친다. '학벌위주 사회의 폐단' 뭐 이런 것들도 막 피부로 와닿고 그런다. 어디 그뿐인가. 획일화된 사회로 인한 조루의 위험, 동시에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등 별게 다 생긴다.

이분을 통해 우리의 상처는 치유되고, 원기는 회복된다. 게다가 얼마전엔 절친 전여옥에 대한 '오크' 비유에 대한 오마주로 공지영을 향해 듣보틱한 생얼 공격을 함으로서 강용석, 전여옥, 나경원등의 절친으로 구성된 지구방위대 언벤저스(말로 후려친다는 의미의 팀. 저작권은 춘심애비님에게 있습니다.)를 관리 통제하는 '멘붕 쉴드'의 초대 국장다운 면모를 다시금 보여주었다. 추후 언벤저스에는 3천만원으로 외계인을 격퇴시킬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만들어내는 '손수조 박사'와, 적의 비밀문서를 모두 복사하여 빼돌리는 스파이 '문대성요원'이 합류하여 더욱 막강해 질 예정이다.

이분의 힐링 트윗으로는 뭐 이런 것도 있다.

'사회적 발언을 하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어라'

아... 정말이지 아름답고, 힐링스러운 격문이다. 왠만한 넘들은 다 주둥이 닥치고 '힐링'이나 하라는 배려. 침체에 빠진 출판업계와 종편으로인해 잘못하믄 조땔지도 모를 조중동의 판매부수까지 걱정하는 구국의 심보까지... 그러나 나는 이분의 트윗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시기는 총선 직후, 나도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6권짜리 사회과학서를 선택, 1-3권을 읽어 재꼈다. 그 책은 바로... 자짠...






바로 '진격의 거인'.

희재형. 나 3권까지 읽었거든. 이제 말해도 되지. 응.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지금부터다.




1. 거인 때문에 친 벽, 벽에 갇힌 우리.






얘긴 뭐 이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갑자기, 뜬금없이 거인이 출몰했다. 성별도 명확하지 않은, 남자의 체형을 갖춘 거인. 문제는 이놈의 거인이 채식, 아니 인간 생식을 즐긴다는 것. 소스도 없이 말이다. 인류의 대부분은 이 뜬금없이 출몰한 거인의 수라상에 모두 오르고야 만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가 선택한 생존의 방식은 바로 거대한 '벽'이었다.






인간은 넘사벽을 설치, 생존, 대항해 오믄서 거인을 쓰러뜨리는 스페셜스킬까지 체득해냈다. 그러나 이 만화, 거인을 향한 투쟁의 연대기만을 던져주진 않는다. 거인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벽. 벽 밖과, 벽 안의 이야기로 확장해 낸다. 이쯤되면 희재형의 기준을 만족시키고도 남는 사회과학서적인 것이다.

벽 밖에는 거인으로 표현되는 공포가 득시글 거린다. 벽안의 세상.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벽안의 세상.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벽안의 세상. 그리고... 거인이 사라져도 여전이 벽 밖을 넘어서지 못하는 벽안의 세상. 바로 그 모습... 만화가 아닌 2012년 우리 세상에서 벌어진 '통합진보당'의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2. 만화가 아닌 현실.

통합진보당의 모습이 딱 그짝이다. 거인(독재)의 공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벽을 둘러 쳤다. 벽안의 다양한 견해와 상황들은 벽 밖의 거인의 존재를 통해 인정되거나, 부정된다. 그렇게 벽안의 자신들을 지키며 거인과 싸워왔다. 정문이던 개구멍이던 대신 나가서 싸워왔다. 한참 뒤에 거인은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거나, 아님 모습만 바꿨거나... 그런데 그 벽은 그대로다. 벽이 그대로니 벽안의 세상이 바뀔리가 없다.




만화 속 벽안의 세상은 그러하다. 거인 출몰 이전의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부패하고 비열하다.  난 통합진보당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그 벽의 존재를 부정할 것이냐?'고. '벽을 부정하고, 벽안 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문제들을 해결이 결국 책임자 몇명을 벽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냐'고 말이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벽안의 진영을 지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인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벽은 그들이 쳐 놓은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많은 이들이 쳐 놓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확인된 많은 지지자들에게 던질 이 엄청나고 오래된 문제에 대한 답이라는 것이 고작 벽안에 숨어 대표외 몇명 포승해 벽 밖으로 내몰며 벽안에 숨어 '얘들 때문이에요'라는 외침이라믄 이참에 그냥 자폭해라. 정말이지 '진보'한 삶을 살아온, 쉬지않고 투쟁하고 싸워온 많은 이들 싸잡아 욕먹이며 패배자로 만들지 말고 말이다.



3. Cellulitis

지금의 문제는 사실 전문적 의학용어로 Cellulitis 상태다. 쉽게 풀어 말하자믄 바로 이거다.

봉.와.직.염

봉와직염은 걸린 이가 '왜 이지경을 만들었냐' 욕을 처묵거나, 그가 처해있는 드러븐 환경에 대한 원망이 쏟아지거나 하는 참으로 웃기는 질병이다. 암튼 다리에 작은 상처하나가 났다. 괜찮겠지. 당장 걷고, 뛰어야 하니 나중에... 뭐 이런 생각으로 방치했다. 간지럽다 싶으면 긁었고, 상처가 좀 커진다 싶으면 좀 더 큰 사이즈의 반창고를 갖다 붙여댔다. 그러다 통합진보당이 결국 얻게된 것. 바로 봉와직염이다.

조중동과, 새누리당과 MB는 상처를 향해 독재보다 더한 민주주의 해악이라 몰아붙이며 공격할거다. 그리고 치료는 개뿔, 다리를 잘라내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바뀌길 바라는 많은 이들을 절름발이로 만들려 할 테고, 그리고 조금 지나면 결국 절름발이라는 이유를 주저 앉히려 들 것이다. 하지만 다리를 잘라버리라는 조중동, 새누리당, MB의 의견과는 달리 대부분의 의학전문가들은 봉와직염에 대해 지식인에 이렇게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러분 걱정 마셔요. '상처 들어내고' 잘 치료하믄 됩니다. 저희 병원에 방문해 주셔요.'


여기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2가지를 써머리 할 수 있다.

하나. 상처입은 다리를 잘라 버리자는 듣보적 의견. 
둘. 치료하지 않고 환부를 대충 덮어 버리자는 얼빠진 의견.

이 두 가지를 견지한다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걷고 뛰게 될 수 있다. 이건 내 사견임과 동시에 지식인에 등록되어있는 많은 의학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4. 진격의 진보.

힘든 순간, 아니 힘든 기회에가 눈앞에 다가왔다. 두손으로 눈을 가리고 손가락 틈사이로 한눈만 빼곰히 뜨고 본다고 해서 환부가 작아지지 않는다. 엄한 내 눈만 짝짝이가 될 뿐이다. 어줍잖은 진영논리로 엄한 쉴드 치지 말고, 상처를 정확히 드러내고 아프더라도 소독하고, 주사맞고, 약 묵자는 말이다.



구.분.하.자


말 그대로 힘든 기회다. 난 사실 이정희대표가 물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정희대표와, 주사파던, 당권파던, NL이던, 경기동부던 누가되었던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하는 책임을 져 주길 바란다. 내가 똥 싸놓고, 친구놈에게 '미안하다. 니가 좀 치워줘' 이라믄 한대 맞을 거 두대 후려 맞는다. 그것도 '딱콩' 맞을 거 '귓방망이' 후려 맞는다. 사퇴를 하던 강호를 떠나던 그건 치료가 끝나고 슬슬 걷기 시작할 수 있을 때 할 일이다. 그렇게 이 힘든 상황을 기회로 만들어 주길 빈다. 도망가지 말란 말이다. '당사 진격투쟁' 이런 거 하지않고,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힘겨움을 감안할 때 더욱 그리해야 할 일이다.

진보정당의 꿈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미있게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라믄 통합진보당은 지금부터라도 솔직하고, 진심어린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라믄 이제 나도 힐링캠프에 나온 연예인이나 보믄서, 변희재의 트윗이나 보믄서 힐링하거나, 만화를 통해서나 희망을 찾지 않고 진심으로 지켜보겠다.


벽을 넘어가던, 아님 때려 부수던 '진격의 진보'가 필요한 때다. 제발 좀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