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7일 화요일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상상의 나래.

상상의 나래.

순대국밥을 앞에두고 깎두기를 집어들었다. 거대한 깎두기를 집어 들고는 어느쪽부터 베어먹을까, 몇 번에 나눠 먹을까 뭐 이런 실존적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용민의 막말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펼쳐질 음모는 깎두기를 네번에 나누어 베어먹는 동안 펼친 상상의 나래다.



막말의 존재.

일단 작년 7월쯤으로 기억한다. 내가 꼼수를 듣기 시작한게... 아마 그때가 다운로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즈음이었을게다. 들어보니 세명이 골방에 앉자 실존하는 권력에 대고 '싸우자'고 떠들고 있었다. 뉴욕타임즈보다 수위가 높았고, 더 재미졌다. 물론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그즈음 권력은 그 셋을 모두 '탈탈' 털었을 것이다. 김용민의 '막말'은 그때 준비되었을 듯 하다.



차가운 반응.

대표적인 친이 꼬붕이었던 오세훈과 나경원이 나가 떨어졌다. 게다가 총선까지의 흐름을 점칠 수 있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마저 박원순에게 빼앗겼다. 그 과정에서 나꼼수는 그야말로 '일등공신'이었다. 헌데 저쪽은 반응은 상대적으로 차가웠다. 언론사 기자까지 합세, 1시간 떠들던걸 2시간으로 늘려, 가카와 한나라당을 연일 씹어대고 있는데도 저들을 반응은 차가웠다. 물론 나꼼수 당사자들이 신변의 압박을 느꼈을 정도의 압력이 분명 있었을 거다. 허나 미네르바 처리하는 저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물론 나꼼수의 대중적 지지와 인기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몰아 붙이는 대신 그들은 준비한 건 정봉주의 구속이었다.



구속 그 이후

오세훈이가 구국의 삽질로 안녕을 고한 이상. 이제 가까이 남은 이슈는 총선이었다. 오세훈 나가 떨어지고, 나경원이 털렸다. 박근혜가 수장을 자릴 자연스레 꿰차게 되더라도 쉽지 않을 상황이었다. 야당은 미리 들떠 있었다. 정봉주가 선거 전 부활할 것이란 예상도 자연스레 했다.(이건 김용민의 출마를 결정하면서 총수가 나꼼수에서 직접 했던 얘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저들은 이 음모를 착안했을지 모른다. 정봉주를 감옥에 집어 넣는다. 사면은 애초에 없다. 그러나 사면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내용을 흘렸을 수도 있다. 정봉주가 나오지 못하고 나꼼수의 대중적 인기는 사글어들지 않는다. 이렇게 정봉주 대타로 나꼼수가 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한다. 언더에 있던 그들을 오버로 끌어 낸 것이다.



김용민의 등장.

나꼼수가 팟캐스트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자금을 공연을 통해 모금하고, 상황에 따라 욕도 서슴없이 하는 이상, 그 상태에서 '막말' 카드로 그들을 공격한다면 역풍을 처맞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을 듯 하다. 더구나 총선에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도... 이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선거연대를 확정한 상태. 나꼼수 멤버 중 김용민이 있다는 것. 즉 대중정치인으로 등장 가능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 이것을 토대로 정봉주의 대타로 김용민이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용민이 등장했다. 나꼼수가 드디어 현실정치판에 등장한 것이다. 정봉주의 이름으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패키지인 야권연대의 이름으로 말이다. 맹렬한 공방을 주고받는 살벌한 선거판에 나꼼수와 야권연대를 한 패키지로 싸잡아 흠집낼 절호의 챤스가 온 것이다. 아니 챤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솔직히 김용민 검찰조사 받고 그날 나오는 모습보면서 좀 놀랐다. 아니 대한민국 검찰이 김용민을 그냥 저렇게 내보낸단 말야. 나꼼수 팬덤이 무서워서... 아님 뭐가 무서워서...



'막말' 공격.

드디어 공격이 시작됐다. 모든 언론, 적국과 아군 모두 먼지가 살짝 앉자있던 포문을 열어재꼈다. 조선일보의 무가지 배포를 봐라. 프로야구 시즌 개막 경기장 앞에 뿌린다. 참으로 세심하고 꼼꼼하다. 더구나 인천에서 열린 SK와 기아와의 경기라는 점에서는 감동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이건 그들의 승부수였다. 작년부터 쥐고 있던 카드를, 확실한 내밀 수 있는 상황을 만든 후에 내민 것이다. 후보로 등장한 김용민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나꼼수를 무력화시킨 후, 동시에 야권연대 싸잡아 흔들믄서 선거판 전체의 주도를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본질은 김용민의 막말이 아니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권력을 쥔, 군사독재를 하믄서 무고한 이들은 수없이 고문하고 죽였으면서도 권력을 쥔, 그렇게 해방이후 수십년간 권력을 쥐믄서 쌓아온 권력유지의 노하우인 것이다. 며느리에게도 절대 물려줄 수 없는 뭐 그런 비장의 노하우. 그렇게 또 당했다.



선거 그 후.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했다. 선발투수도 중요하지만 운용, 즉 로테이션도 중요하다. 로테이션의 구성과 계투와 마무리의 운용, 적절한 타이밍까지... 우리가 싸워야 할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뉴욕양키스였다. 다른팀에선 특급마무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를 데려다 중간계투를 맞기는 뭐 그런팀. 이번 총선을 통해 확실히 느끼고도 남았다.

정봉주가 구속된 이후 '김용민'이 나올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만약 저들이 나꼼수가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해가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기전부터, '정봉주 대신 나꼼수 누군가 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이 기획을 한 것이라면, 저들은 뉴욕 양키스가 아니라, 뉴욕 양키스에 보스턴 레드삭스를 합쳐놓은 팀 정도가 되는 것이다. 내가 박수 함 친다.

그리고 그 기획자는 박근혜가 아닌 다른 누군가다. 실체에 접근하기 졸라 어려운 그 누군가 말이다.


상상의 나래.

이건 뭐 앞서 말했듯이 깎두기를 씹어 묵으며 펼친 상상의 나래일 뿐이다. 지고 나니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지 뭐. 만약 내가 정보를 다 틀어쥐고 있으믄, 이번 대선한번 멋지게 기획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정보가 내게 들어 올리도, 그런 기획을 내게 맡길리도 없다는 것이다. 이게 다 가카. 아니 깎두기 때문이다. 슬프다. 재밌자고 쓴 글이 재미가 없다. 상상의 나래에도 종류가 있다고 참 쓰잘데기없는 상상 되겠다. 미안하다. 그래도 기운은 내자.



2012년 4월 10일 화요일

사장학개론





그곳은 PCB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난 그곳에서 원판을 재단하는 일을 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원판을 들어 옮기고, 자르고, 나르고 하는 일들을 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늘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해야 했다. 분진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끼지 않았다. 숨이차기 일수였기 때문이다. 생산에 투입해야하는 원판을 계속 잘라 날라야 했다. 평생 먹을 먼지, 그곳에 있던 2년 동안 다 먹었다. 사실이다.


프레스반 형들의 선택도 늘 그런 식이었다. 안전센서(손이 프레스 사이에 있으면 작동이 되지 않는)를 늘 끄고 일했다. 끄지 않으면 손가락, 손이 날라갈 걱정은 없으나, 생산량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늘 생산량이었다. 내가 일했던 2년동안 수건을 손에 감싼채 병원으로 실려가는 모습을 딱 세번 봤다. 이거 무슨 쌍팔년도 얘기냐고? 정확히 2004년도 얘기다.


주야 맞교대였다. 내가 주간을, 밤에는 인도네시아온 '때딕'이 책임졌다. 생긴건 나보다 너댓살은 더 많아 보였으나 늘 내게 형이라 불렀다. 사실 내가 한살 형이었다. 한달 내내 밤새 일해도 받는 임금은 6-70만원 정도였다. 그러니 난 항상 주간, 때딕은 항상 야간이었다. 때딕은 짧은 우리말로 내게 종종 이런말을 하곤 했다.

'형. 돈 너무 짜. 너무 짜. 힘들어.'

고향에 돈도 보내줘야 하고, 알선 수수료도 내야 하고, 이것저것 먹기도 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같은 기숙사 밖을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늘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때딕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때딕. 나도 힘들어.'






만드는 제품의 공정상 여름엔 졸라 덥고, 겨울엔 따뜻했다. 헌데 내가 일했던 재단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뭐 그랬다. 재단실은 사장님 전용 파킹 스테이쥐 옆에 있었다. 졸라 일하다 잠깐 쭈구리고 앉자 담배라도 하나 물고 빨기 시작하믄 사장의 대형 쉐단 '체어맨'이 스르륵 하고 들어온다. 사장의 출근 시간은 늘 랜덤이었지만 주5일 중 4일은 내가 담배 피고 있을 때 들어오곤 했다. 신기하기 그지 없게도... 차문이 스스륵 열리고 사장님이 내린다. 난 담배를 얼른 끄고 일하는 척을 한다. 사장의 검은색 쉐단도, 검은색 구두도 늘 반짝거렸다. 회사에서 가장 깨끗한 거, 바로 사장의 쉐단과 구두였다. 


일하는 척을 하믄서 사장쪽을 곁눈질 한다. 피다만 담배가 아쉬운 탓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장은 공장을 '스윽' 한번 훑는다. 그리고 쉐단, 구두에 혹여나 먼지가 묻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씨발 내 머리엔 먼지가 서릿발처럼 내려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트렁크를 연다. 꼼지락, 꼼지락. 큼지막한 아이언을 꺼내들고는 보란듯 호탕한 스윙을 하기 시작한다. 사장의 체구는 거의 김구라 수준이었다.(너무 비슷해 김구라를 언급한 것 뿐이다) 스윙은 호쾌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마치 '일하는 시간에 잠깐이라도 농땡이 까믄 아이언, 오케이'라믄서 무언의 협박을 하는 하는 듯 했다. 그렇게 몇번의 스윙을 하곤 2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눈치보던 나는 그제서야 못다핀 담배를 다시 꼬나문다.







지하엔 구내식당이 있었다. 10년이 넘게 할머님이 주방을 맞고 계셨다. 회사에선 할머니에게 월급을 준다. 그리고 1달 음식값을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12시 점심과 5시 저녁, 12시 야근조 점심 이렇게 하루 세끼를 준비한다. 돈은 늘 부족하다 했고, 반찬은 형편 없었다. '할머니 반찬이 이게 뭐예요'라고 누군가 한마디 하믄 눈물을 글썽이믄서 이렇게 말하고 했다.

'왜 나한테 그래. 나보고 어떻하라고'

사장과 일부 임원들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지 않았다. 가끔 내려온다치믄 반찬을 보곤 '아줌마 반찬이 이거 왜 이래. 난 라면' 이러곤 했다. 그들이 '난 라면'하믄 라면에 계란까지 하나 멋지게 풀어재낀 라면이 자리로 배달 됐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임원처럼 라면을 먹고 싶어했다. 무채에, 깻잎, 콩자반에 미역물(미역에 물만 들어가 있는 국을 난 미역물이라 불렀다)이 전부인 식판을 앞에두고 옆에서 풍겨오는 라면 냄세를 참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나도 들으란 듯이 '할머니 나두 라면'이라 외쳤다.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었고, 할머니는 아무 댓구도 하지 않았다. 라면을 처묵던 임원만이 '미친놈'이라고 한마디 건낼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2시쯤인가 식당에 내려간다. 그나마 할머니와 친했던 터라 할머니가 숨겨놓은 라면을 몇개씩 받아다가 쉬는 시간에 사람들과 깨먹곤 했다. 할머니는 늘 내게 라면 서너개을 쥐어주시믄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만 특별히 주는 겨'

그날도 라면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헌데 식당엔 사장님이 앉자 있었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아 씨발. 일하는 시간에 여길 왜 처내려왔냐는 욕을 처묵게 생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장이 뭔가 찔리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순간 난 '할머니 물 안나온다믄서요? 어디에요?' 멘트를 치믄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믄서 사장의 식판을 봤다. 우리가 먹은 점심과는 전혀 딴판의 식단이었다. 양은냄비 속 김치찌개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계란 후라이의 흰자는 너무나 깨끗해보였다.허나 노른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가 더 있었는데... 다 확인하진 못했다. 대충 수도꼭지를 보는 척하다 현장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나 다시 내려갔다.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사장은 늘 2시쯤 내려와 따로 점심을 먹는다 했다. 계란 후라이를 좋아하고, 늘 노른자를 빼고 부쳐준다고 했다. 사장이 살찔까봐 특별한 주문한 것이었다.


PCB라는게 원래 그렇다. 저임금 구조에 노동은 고되다. 그래도 버는 놈들은 따로 있었다. 임원들은 4-5시믄 퇴근했다. 일은 넘쳐났고, 힘들었다.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난 군대 대신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역특례병이라 불리는... 내게 희망은 '2년만 일하믄 떠난다'는 것이었다. 이 희망마저 없는 이들에겐 그저 슬픈 것이기도 했다. 현장 직원들은 물론, 관리자들도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몇몇 생각있는 관리자들이 현장 직원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이 줄어들었던 때가 있었다. 서서히 줄더니 주야 2교대를 할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직원들을 모두 주간으로 돌려 주간 근무만 했다. 하지만 줄어들기 시작한 일감으론 야근도 힘든 상황이었다. 헌데 일도 없는데 늘 야근을 시킨다. 허구헌날 청소를 시키고, 재고를 조사하게 하고, 방금 점검한 장비를 또 점검하라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사장의 지시였다. 일이 없다 직원들을 쉬게 하믄 이담에 일을 시켜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장은 모든 걸 다 지맘대로 할 수 있었다. '불만' 그런 것들은 자신의 돈 몇푼 쥐어주면 만사오케라 대놓고 피력하곤 했다. 그러나 '불만'은 돈 몇푼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현장의 몇몇 관리자들에 대한 직원들의 신망은 두터웠다. 그 몇몇은 때론 거부할 줄도 알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할말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신망이란건 그렇게 쌓였다. 임원이란 양반들은 그게 싫었다. 사장이 하고 싶은 말만을 옮기고, 사장이 시키고 싶은 일만 시키는 메신저인 그들에게 신망이라는 건 사장의 욕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건 몇해전 회사를 나갔던 악명높은 관리자를 영입해 자신들과 반동 관리자들과의 사이에 박아 넣는 것이었다. 사장은 이 건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듯 승인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장의 아주머니 한분은 청심환을 노가리 씹듯 한덩어리 꿀꺽하시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직원들을 직급에 상관없이 '년'과 '놈'이라 불렀다고 했다. 굳이 어떤 넘이냐고 더이상 묻지않았다. 아줌마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현장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무실로 향했다.


모든 직원들의 서명이 담긴 연판장을 돌리기로 했다. 그지같은 관리자의 영입을 반대하고, 사장의 눈치나보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엿 같은 관리자들과 반성과, 직원들의 합당한 의사와 요구에 귀 기울려 사기를 진작하고, 그를 통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애사심을 발휘, 함께 회사를 발전시키자 뭐 그런 내용을... 나보고 쓰라는 것이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산업특례병이었다. 그리고 일종의 전역, 그러니까 퇴사를 한달 앞두고 있었다. 연판장을 준비하고 일주일 뒤 공장을 전원을 모두 내리고 확실한 의지를 담아 사측에 전달한다고 했다. 까딱 잘못해 뭔 일이라도 생기면 그동안의 개고생은 모두 파토가 될지 모르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제안을 한 관리자 형님은 내게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대단한 의지가 아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황에 의한 결정이었다. 딱 담배 한갑을 해치우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연판장은 그렇게 작성이 되었다. 서명도 완료되었다. 결전이 날이 밝았다.


오후 2시에 일제히 전원을 내렸다.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모였다. 사측에선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이 시간 맞춰 회사를 빠져 나갔고, 연판장은 임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임원들은 차분히 준비된 멘트를 씨부렸다.

'마.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달려달라'





'그래도 공장을 세웠으니 한번 지켜보자'는 의견에 따라 모두 해산했다. 내가 실제 겪은 첫번째 파업이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짧은 파업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포섭된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포섭된 사람, 그리고 불안해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이미 정상적으로 가동할만큼 되고도 남았다. 연판을 주도했던 관리자들은 사직서를 올렸다. 무리해서 그들을 사직을 승인할 경우 그로인한 업무의 혼선을 피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직서엔 등돌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이제 내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작성했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터였다. 그 날 오후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내에 계신 00씨, 00씨 지금 바로 사장실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씨발. 조때다.


사장은 온화한 표정으로 책상앞에 앉자 PC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불안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사장은 졸라 온화한 표정을 날 바라보며 일어나서는 쇼파에 와 앉잤다. 그리고 나보고 앉으라 했다. 뭘 마시겠냐 물었다. 불안했는지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후 비서가 커피를 가져왔다. '음. 커피를 시켰구나.' 사장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몇살이지?'

이렇게 간단한 몇가지 신변얘길 주고 받았다. 사장은 냉면 육수를 들이키는 소리로 커피를 한잔 들이키고는 씨껍한 질문을 건냈다.

'너 이제 2주 남았지?'

 이 상황을 미리 예측하여 모법답안을 작성해 놓았다. 그리고 몇번이고 연습까지 했다. 헌데 정리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 그러니까. 사실. 그게...'

머뭇거리던 사장이 내 말을 끊었다.

'그래 젊은 나이엔 그럴 수 있어. 바꾸고 싶은게 많겠지. 그지? 근데 말야. 세상엔 쉬운게 없어.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우리 처남이 있어요. 너보다 한두살 정도 위일 거야 아마. 너랑 비슷한 성격인 것 같어. 근데 말야. 일찍 이민을 갔어. 거기서 한두해 고생하더니 지금 자리잡고 잘 살고 있어. 너 보니까 말야. 우리 처남 생각이 나. 너도 말야. 더 늦기전에 내 얘기 함 잘 생각해봐. 힘들어도 나가 사는거야. 가능성이 많아요. 젊어서 도전을 해야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함 떠나봐.'


어. 씨발 이거 뭔 얘기지. 당장 회사를 떠나란 말인가. 나 같은 넘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내가 황무지와 같은 먼 이국에서도 자리잡고 살만한 진취적이고 능력있는 넘이란 말인가. 도대체 뭔 말이냐고..

'가봐'

혼란한 머리속까지 도달한 것은 '꺼지'라는 사장의 말이었다. 아무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하고는 사장실을 빠져 나왔다. 혹시 누군가 내게 '유 퐈이아'라고 할까봐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때딕은 자뭇 진진하게 내게 뭐라고 했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술을 이빠이 들이키고는 잠에 들었다. 막상 다음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


출근하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불안감 뿐이었다. 회사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악덕 관리자가 첫 출근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씨발. 그 관리자의 첫 미션이 나같은 반동을 정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 들이킨 술이 순식간에 분해되믄서 머리속이 깨끗해졌다. 최악의 상황, 바지끄댕이라도 잡고 늘어진다는 배수진을 쳤다. 저멀리서 누군가 내개 달려왔다. 저놈은 분명 초당 24프레임 정도로 오고 있을진데 내 눈엔 초당 300프레임 정도의 슈퍼 슬로우로 보였다. 바지끄댕이를 잡을때는 살짝 무릎을 꿇어주는 것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달려온 친구놈에 내 눈앞에서 이러는 것이었다.

'야. 어제밤 일이 하나도 안되있어 지금 난리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밤 때딕이 해놓았어야 할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숙소에 뛰어가 문을 열었다. 방은 너무나 깨끗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어제 밤 때딕이 멘붕상태인 내게 했던 말은 일종의 작별인사였던 것이다. 문틈에 앉자 담배를 하나 물었다. 때딕은 착한 친구였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주믄 '형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던 친구였다. 정확히 오늘부로 그 친구를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다. 허나 더이상 때딕의 걱정을 해주진 못했다. 이미 내 앞에는 새로온 관리자가 떡하니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던진 첫 인사는 이러했다.

'야이 새끼야. 어서 담배피고 있어. 라인 끊기믄 죽을 줄 알아'

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총알처럼 튀어갔을 뿐이었다.




며칠후 사직서를 제출했던 관리자 몇몇이 돌아왔다. 이렇게 회사는 더욱 안좋은 꼬라지로 견고히 구축되었다. 때딕없이 난 남은 2주를 입에 거품물고 채웠다. 후임자가 오기까지 며칠을 더 채운 후 난 퇴사, 아니 제대를 했다. 별다른 송별회 이런 건 없었다. 조용히 잔업까지 마치고 퇴근한게 전부였다. 취업을 한고 몇년 뒤 회사를 찾았다. 분위기는 더욱 어두웠다. 사람들은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몇몇 넘들은 참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장도, 임원들도, 그들이 데려온 관리자도 그대로 였다. 당연 회사도 그대로 였다. 매캐한 냄세도, 핸드폰 벨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소음도 그대로 였다. 아니 조금 바뀌었다. 매출이 좋지 않다는 이유는 급여는 대부분은 동결되었고, 일부 관리자들의 급여는 감봉되었단다. 일부 관리자들은 당연 '단기속성파업'을 주도했던 이들이다. 주차장엔 번쩍이는 새차가 눈에 띄었다. 새로 바뀐 임원들의 차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다.


회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자주 있었다. 어떻게하믄 바뀔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뻔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깐. 기업이라는 공적인 조직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장의 소유물쯤으로 인식되는 이상, 사장과, 사장이 임명한 수족(임원)이 그대로인 이상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조합을 만들은 정당한 요구안을 들고 사측과 협상하고 싸우는 구조를 만든다는 건 왠만한 중소기업에선 대충 10억 광년은 떨어져있는 이름없는 행성에서나 가능한 일로 치부된다. 어렵다. 정말 어려운 것이다. 이제 직장생활 10년차쯤에 접어들고 있으나, 회사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적 없다. 정당한 불만과 요구가 있더라로 대부분 결론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되었다. '그냥 붙어 있거나' 아님 '냅다 째거나' 그저 속담처럼 '중'이다. 절을 앞에둔... 서럽고, 힘들다.


안타깝게도 가카에게선 사장의 향기가 난다. 사장은 결재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수족과 같은 임원들의 곳곳에 짱박으믄 만사편하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할 이유도 없다. 뭐 문제가 심각하다 싶으믄 전 사장 탓하거나, 임원하나 책임 물어 짤라버리믄 되니깐, 이렇게 지난 4년동안 국가는 개인의 소유물 쯤이 되어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난 10년을 직장생활하믄서 회사가 바뀌는 꼬라지를 본적이 없다. 참여가능한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일단 '임원'들은 바꿀 수 있다. 사장의 수족이 아닌 우리의 수족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게 바로  내일이다.


'바꾸믄 뭐하나. 그게 그거지'라 미리 주저하지 말자. 우리가 다니고 있는 직장 함 생각해보자. 임원과 사장이 직원의 힘으로 통째로 바뀌었다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럼 회사 바뀐다. 그래도 안바뀐다믄 그건 다른 문제가 있는 거다. 악령이 씌었다거나, 회사 밑으로 폭 10km, 깊이 10km의 거대한 수맥이 흐른다거나하는  뭐 그런거...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이 말에 대답해 줘야 할때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우리손으로 임원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4년동안 눈치보믄서 사느라 수고했다. 임원들을 바꾸믄, 사장도 바꿀 수 있다. 그럼 나라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우린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전국의 직장인이여 대동단결하라. 예비직장인도 총발기, 아니 총 궐기 하라. 70% 가당찮다. 100% 참여하자. 그리고 우리 간만에 기분좋게, 밤새도록, 코가 삐뚤어질때까지 함 마셔보자. 술이 얼큰하게 올라왔을 때쯤 '씨익' 웃으믄서 앞선 질문에 이렇게 답하도록 하자.

'조까'




11일, 내일 하루를,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우리 모두의 생일판으로 만들자. 그리고...




'미리 생일 축하한다. 모두'


2012년 4월 4일 수요일

Kindle Touch

아내가 회사에서 무슨 별 다섯갠가를 받았단다.
부상으로 포인트가 나오는데... 미쿡회사다 보니 이놈에 포인트라는게 쓸데가 없다. 다행히 아마존은 된단다. 그래서 생각에도 없던 이걸 샀다.







킨들 터치 + 라이트 케이스. 킨들 터치는 광고버전($99)과 무광고버전($139) 이렇게 두가지가 있다. 광고버전은 스크린세이버시 전면광고, 메뉴화면 하단에 작은 광고 뜬다는 거 빼고는 모두 동일. 게다가 신경쓰이는 정도도 아니니 광고버전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이 좋을 듯...

한간에 FTA덕분에 15만원이 넘어도($200까지) 관세 물지 않을 거라는 말은, 킨들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킨들터치+라이트케이스 +배송비까지 $168 정도. 통관시 세금이 $25불 정도 나왔으니깐...

킨들은 일반 타블렛과는 다르게 E-INK(전자시계와 같은 액정방식과 비슷한) 방식이어 눈이 피로하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쇄물과 같은 액정방식이다보니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 일반 가죽케이스보다 $20 더주고라도 라이트케이스가 낫다.




킨들터치의 구성은 달랑 이 정도다. 케이블로 PC와 연결한 후 자신의 아마존 계정과 패스워드만 입력하면 셋팅은 거의 끝난다. 셋팅이 끝나면 SEND TO KINDLE을 아마존에서 다운받아 설치한다. 설치에도 아마존 계정만 넣어주면 깔금하게 끝났다. 그럼 킨들=PC=아마존 계정의 동기화가 끝난다. CrAutoFix라는 프로그램으로  txt 파일 문장을 정리하고,  파일에 우클릭 SEND TO KINDLE하믄 아마존으로 파일이 전송되고 변환된 파일이 킨들에 자동으로 내려받기 된다. 단 킨들은 WI-FI만 지원함으로 무선이 되는 곳에서 WI-FI만 켜놓으면 된다.




가격도 괜찮고, 생김새도 괜찮고 나쁘지 않다. 그러나 두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기본으로 제공하는 한글 폰트가 꽤나 멋대가리가 없다. 가독성도 떨어진다. 방법은 탈옥 후, 폰트핵 설치, 원하는 한글 폰트를 선택해서 볼수 있는데, 이런 과정들을 싫어하는 분들 꽤 많다. 나도 그중 하나고... 어쨋거나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좀 귀찮긴 하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다. 동호회나 카페에 많은 방법들이 나와있으니 그대로 하믄 된다. 하고나믄 알게 된다. 진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다른 하나는 한글컨텐츠가 정식으로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서를 주로 보는 분덜에겐 더할나위 없는 선택, 더군다는 오리지널 컨텐츠의 경우 X-RAY, 사전등의 기능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킨들은 지원하는 한글 E-BOOK은 없다. 다른 포맷을 변환하여 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보니 많지도 않다. 특히 PDF의 경우 쥐약이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일단 손에 쥐어졌으니 함 열심히 써보는 수 밖에...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보시는 분들께는 아이패드보다 킨들이 좋은 선택일 듯 하다. 음악, 웹서핑등의 기능도 가능하지만, 아마도 책만 보게 될 것이다. 배터리도 한번 완충하믄 2-3달은 간단다. 선호하는 언론사 RSS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변환하여 파일처럼 넣어준다. 읽는 게 취미인 분들에겐 다른 제품은 필요없다. 이게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