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5일 월요일

[쾌거] '더 딴지'


 
 
 
 
 
 
'D-5'

10월 30일 기준 D-5. 정확히 11월 10일을 의미한다. 그렇다. 본지는 지금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그것'의 등장을 준비하고 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질 기세엔, 열리고 갈라진 구녕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서려있다. 사이트 개편 직후 디도스에 후려 맞아 너덜해진 게시판에 대한 독자들의 사자후와 같은 요청에도 묵묵부답, 초지일관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본지의 대답은 바로 '그것'이다. 이 대답이야말로 독자덜의 향한 본지의 애정 어린 '성동격서 聲東擊西'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카피가 등장한지 10년이 넘었지만 벌렁거리는 슴가를 주체할 수 없어 한번만 더 우려먹는다.

'독자덜이 무엇을 상상하던 상상한 것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WIRED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로 사망. 사인은 췌장신경내분비종양.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그가 만들었지만 한 때 쫓겨나기도 했던, 다시 돌아와 한 때 자신을 쫓아냈던 지랄 맞은 기업을 충격적인 제품들의 연이은 히트를 통해 시가총액 707조라는 슈퍼울트라그레이트 기업으로 만들어놓은 장본인.
그가 떠난 날 애플은 자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순백색의 바탕에 그의 모습을 넣는 것으로 애도의 마음을 담아 전세계로 보냈다. 그리고 같은 날, 미국의 유명한 IT, 디지텁 잡지인 와이어드 WIRED는 자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애플의 홈페이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올려 그와의 이별을 진심으로 추모 했다. 스티브 잡스와 각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와이어드 메인 페이지


1993년 3월. 저널리스트 루이스 로제토, 그의 친구 제인 멧칼프, 소프트웨어 기술자 찰리 잭슨, MIT 미디어랩의 리콜라스 네그로폰테와 의기투합해 창간한 와이어드 WIRED. 본적(本籍)이 닷컴버블의 진원지 실리콘벨리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와이어드는 첨단기술과 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룸과 동시에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서 창간 이후 지금까지 후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잡지 되겠다.
 
그들과 스티브 잡스와의 각별한 관계는 디지털기술+문화라는 잡지의 컨셉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20년의 잡지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성공이 바로 2010년 1월 27일 스티브 잡스가 손에 들고 '쫘잔'하며 선보였던 바로 그 제품 바로 '아이패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짜잔~


'별로 놀랍지 않아. 커진 아이폰이니깐'. (닌텐도 사장 이와타 사토루)

'아이폰을 보고는 내가 좀더 빡세게 살아야겠구나 했는데, 아이패드 보고는 어째 대충 살아도 되겠더라구'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 빌 게이츠)


예나 지금이나 제품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혁신은 없다'는 회의적 시각들이 이런 식으로 언론을 통해 전달되었으나, 보란 듯 '쌩' 까고 '때는 이때다. 돌격 앞으로'를 외친 기업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와이어드였다.

 

뉴스가판대
 
와이어드의 디지털 매거진이 세상에 등장한 건 아이패드가 발표된 지 2개월이 지난 후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패드용 매거진 앱을 공개하고 $4.99에 책정한 디지털 매거진의 다운로드 수는 1달 만에 10만 건. 하루에 2만 4천건 정도의 유료 다운로드가 진행된 셈이며, 이는 종이 책 판매부후의 150퍼센트에 해당하는 결과였다. 하지만 당장의 행운은 아니었다. 디지털 매거진 전투에서의 완벽한 선점은 93년 창간이래 꾸준히 생산해온 개성 있는 컨텐츠와, 어도비와 손잡고 진행한 2년 여간의 재식훈련 덕에 가능했다. 현재의 디지털 매거진 제작 툴의 표준이 되다 싶이 한 Adobe DSP(Digital Publishing Suit)는 바로 와이어드와 어도비간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IDEAS, TECHNOLOGY, CULTURE, BUSINESS = WIRED
 
 
2012년 현재. 뉴스가판대에 등록된 전세계 신문, 잡지의 수는 대략 3000여 개. 와이어드의 1개월 10만 다운로드라는 성공적인 기록은 같은 해 10월 1/5(2만 2천건)수준으로 떨어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나, 현재 등록된 3000여 개의 컨텐츠들은 사실 아이패드의 등장과 와이어드의 성공이 불러온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와이어드를 최고의 선두주자라 꼽는다. 그들의 개성 있고 현란한 표지는 그렇게 지금도 뉴스가판대를 채우고 있다.

 

무규칙 2종 매거진 '더 딴지 The DDanzi'

 
아이패드로 시작된 디지털 태블릿 시장은 이제 강호의 고수 모두가 덤벼 각축하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다. 9인치 아이패드를 시작으로 삼성의 캘럭시 탭, 7인치 아마존 킨들을 시작으로 구글의 넥서스와 아이패드 미니까지. 하드웨어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만큼, 하드웨어(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컨텐츠 시장도 무지막지하게 성장했다. 이 거대한 시장에, 아니 하루가 다르게 진입과 퇴출이 반복되는 살벌한 전장에 사~알짝 뜬금없이, 디지털 매체의 홍수 속에 스스로 방주가 될 것임을 만천하에 알린 시가총액 확인불가(?) 기업이 있었으니 그것이 '딴지일보' 바로 본지였다
 
아이패드 미니가 발표된 지 일주일 만에 등장한 'D-11'이라는 전격적인 발표는 정확히 2년을 준비하고 아이패드가 발표된 지 2달이 지나서야 등장한 와이어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신속함과 민첩함을 보여주었다. 국내 유일, 국내 최초 사이버 민족정론지라는 찬사가 지 맘대로 달라 붙은 게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께 알린 실존적 메시지와 같은 충격의 공지였던 것이다.



 

똥꼬가 헤질 때까지


하지만 늘 남들이 '똥침'이라는 찌르는 1차원적 행위에만 집착할 때, 똥침 후 묻어 나올지 모를 건더기에 대한 고찰에까지 사유의 영역을 확장에 왔던 본지 아니었던가. 앞서 말한 본지 답지 않은 신속함, 민첩함과 더불어 '더 딴지' 컨텐츠의 내용이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됨으로 인해 발생한 불안과 냉소를 원샷에 종식시키는, 개성적인 디자인의 대가 와이어드 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표지디자인까지 선보이는 디지털 매체 역사의 쾌거를 만들어낸 것이다. 남들이 인형과 피규어 등으로 집을 장식할 때 책으로 집을 데코뤠이션했던 필자의 수많은 장서 중 유일하게 두 책과 살짝 닮아있는 그 표지. 필자 그제서야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만화 체게바라, 평전 체게바라, 그리고 '충격'


그렇다. '더 딴지' 표지는 그 자체로서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 던지는 숭고한 포고문이자 결연한 출사표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여백의 미가 한껏 느껴지는 표지. 새롭게 개정될 21세기 디자인 백서에는 코카콜라, 폭스바겐 비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자켓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 이 필자 확신, 두 번 확신하는 바다.



2012년 11월 10일


2012년 10월 30일 너불 편짱의 역사적인 트윗에서 밝힌 'D-11'로 유추해본 '더 딴지'의 발표일은 2012년 11월 10일이다. 발표와 함께 대대적으로 치뤄질 컨퍼런스는 요즘 커피가 예전만큼 팔리지 않아 살짝 걱정인 BUNKER1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너불 편짱의 PT로 진행될 KEYNOTE는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 전세계의 생중계 될 예정이다.

2011년 11월 10일 이후. 사람들은 선두주자를 와이어드로, 끝판왕을 '더 딴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11월 10일이 '더 딴지'가 나와봐야 확인 가능 한 것이다. 본지의 열혈 독자시라믄 필자의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도 남을 것이다. 자. 역사적인 발표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필자의 글 한 토막도 예정대로라면 실리게 될 것이다. 물론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필자 역시 전혀 모르고 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살짝 꼴리는 새로운 시작임은 확실하다.
자, 우리 모두 남은 며칠 동안 귀두를 쫑긋 세우고 주목해보도록 하자. 그렇다고 독촉하지는 말자. 독촉해봐야 '안될 건 안된다는 거' 누구보다 본지 독자덜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 11월 10일에 보자.
 



추신) 예나 지금이나 딴지는 어려웠지만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필자가 팬 일 때도, 이렇게 시덥잖은 글 나부랭이로 손을 보태고 있는 지금도 말이다. 그렇다고 딴지가 힘들다고 유세한적도 없다. 그래서 딴지를 지켜준 딴지 편집부와 딴지를 거쳐간 수많은 선배필진들에게 가끔 졸라 감사한다. 이런 멘트 서로간에 닭살스러워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 참에 날 잡은 필자가 한번 씨부려본 것이니 너무 뭐라들 마시길. 더 딴지 The DDanzi는 진짜 좀 잘 됐으면 조케다. 꼭 한번이라도 고료를 받아보고 싶어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선수들 - 프롤로그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지금부터 도둑들, 아니 '선수들' 얘길 시작할까 한다. 존나 잘하고, 잘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대접도 받고, 언론의 플래쉬 세례를 독차지하고, 몸에서 광채가 나는 여친도 있는, 뭐, 그런 슈퍼스타들 말고 이런 선수들 말이다.

선수입장

메이저리그에 보스턴과 뉴욕이라는 앙숙이 있다면 한국프로야구엔 기아와 롯데라는 앙숙다운 앙숙이 있다. 보스턴과 뉴욕이 앙숙인 이유는 같은 지구여서만이 아니다. 보스턴이 민주당의 큐브와 같은 곳이라면 뉴욕은 공화당의 아크원자로 같은 곳이다.
게다가 보스턴이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넘긴 이유로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밤비노의 저주(물론 2004년에서야 첫 우승을 하면서 깨지긴 했지만)로 얽혀있는 철천지 웬수 사이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이 두 팀의 맞대결만큼 뜨거운 경기는 없다. 게다가 두 팀의 팬들만큼 극성쩌는 팬들도 없고.
 
<앙숙간의 난투극이야 말로 최고의 난투극>


기아와 롯데도 뉴욕과 보스턴 못지 않다.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이 새누리당 우세의 경상도라면, 민주당의 연고지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게다가 선동렬과 최동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라이벌 역사가 서려있는 앙숙다운 앙숙되겠다. 그런 앙숙간의 올 시즌 첫 경기. 기아의 주포 김상현이 부상으로 빠져있고, 롯데의 슈퍼타자 이대호는 롯데가 아닌 일본 오릭스의 선수였다. 하지만 스타가 빠졌다고 해서 앙숙이 베프가 될 수는 없는 법. 경기는 앙숙답게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화끈한 라이벌전의 희생양은 타자가 아니라 투수였다. 기아 선발투수 앤서니가 3이닝 5실점 강판, 롯데 선발투수 사도스키가 4와 1/3이닝 5실점 강판, 양팀의 선발이 모두 무너져 마운드에서 내려간 이후 기아가 4명의 투수, 롯데가 6명의 투수를 투입, 총 12명의 투수가 긴급 출동한 이 경기에서 롯데가 11-7로 승리하면서, 롯데는 무려 1462일만에 단독 1위 자리에 올랐다.
4월 7일부터 시작해 10월 6일(182일)에 끝난 올 시즌 정규시즌을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9년 만에 첫 단독 1위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 미션 임파서블한 게임에서 김성배는 이날 투입된 롯데의 7명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김성배가 공 10개로 2명의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온 지 며칠 뒤 한 언론은 짤막하게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이성배>



그렇다. 그는 시즌 초 그저 2차 드래프트에서 간신히 롯데에 이름을 올린 성이 '김'인지 '이'인지도 햇갈리는 이름조차 생소한, 나이 많은(31세) 선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즌 기록은 69경기에 등판 53 1/3이닝 3승 3패 14홀드 방어율 3.21로 선방했다.
올 시즌 롯데가 야심차게 영입한 연봉 3억 5천의 이승호(48 2/3이닝 방어율 3.70)보다 좋은 성적이었고, 부상으로 3경기 출장밖에 하지 못한 연봉 5억의 정대현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
게다가 S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역전승의 주인공이 되어 게임MVP에 올랐다. 연봉 1억 5천에서 5천으로 삭감되어 두산에서 롯데로, 그것도 2차에 트레이드 된, 31살 김성배의 시즌은 이렇듯 너무나 훌륭했다. 더 이상 임경완을 잡지 않았다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롯데는 게임스코어 3-2로 패배가 담긴 쓴 잔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댈 선수들. 바로 김성배와 같은 선수들이다.




'선수들'

 
'세상은 넓고 선수는 많다.'


최고라는 호칭을 얻지도, 그에 걸맞는 최고의 대우를 받지 못해도, 성공의 주변을 맴돌거나 성공의 근처에서 나자빠져도 늘 뜨거운 선수들. 때론 눈에 띄지 않아도 늘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며 땀을 흘리는 선수들. 2002년 오클랜드의 20연승(1-아래 주 참조)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종목을 불문하고 발굴, 디비고 조명하는 것이 바로 이 연재의 역사적이고 친환경적인 사명이라 하겠다.
 
 
독자들의 애정 어린 제보와 선정위원(축구의 필독, 프로레스링의 UMC, 스모의 죽지않는 돌고래, 비키니 미식축구의 춘심애비 등, 아직 본인들은 모르고 있음)들의 듣보스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종목에서 선정된 선수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헌사하고, 딴지 명예의 전당에 주저 없이 헌액함으로서 선수들의 땀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 보전해 나갈 것이다. 숭고하고 결연한 이 길, 딴지 아니믄 누가 걷고 자빠져 있겠는가.




It Ain't Over 'Til It's Over

'It Ain't Over 'Til It's Over'. '끝나기 전에 끝난 것이 아니여'란 이 말은 메이저리그 명예전당에 오른 뉴욕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다니엘, 아니 요기 베라의 명언이믄서 동시에 필자가 졸라 좋아라하는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여 – 요기 베라 with 우승반지>


요기 베라의 말처럼, 게임은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목을 불문하고 게임엔 슈퍼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는 선수(팀)가 있어야 이기는 선수(팀)가 있는 게 게임의 섭리니 어쩜 슈퍼스타에 가려진 '선수들'덕에 게임은 더 흥미진진한 걸지도 모른다. 김성배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맥주 한 캔씩 들고 경기장에서, TV 앞에서 신나게 떠들며 보는 일만 남았다. '알고보면' 스포츠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인가. 스포츠의 계절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수많은 '선수들'이 여전히 땀 흘리고 있다.

(주1) 2002년 8월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벌어진 오클랜드의 20경기 성적은 20승 무패. 20연승은 103년의 아메리칸리그의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 3게임은 모두 끝내기 승리.
특히 마지막 경기는 11-0으로 이기고 있다 11-11로 동점허용. 끝내기 홈런으로 막장드라마틱한 승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1억 2592만 달러로 연봉총액 1위(오클랜드는 4004만달러로 28위)였던 양키스와 같은 103승으로 지구 1위. 리그MVP(미구엘 테하다), 사이영상(배리 지토)을 모두 휩쓸었다. 2002년 시즌 초 꼴지였던 오클랜드는 그렇게 2002년 포스트시즌에 기적처럼 진출했다.

** 독자덜은 눈치챘을지 모르겠으나 딴지 명예의 전당엔 이미 한 선수가 헌액 되어있다. 바로 전 보스턴 레드삭스의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다.


팀 웨이크필드(기사 링크)


당시 '천번은 아파야 어른이 된다'는 훈계가 하도 어이없어 결론을 그리 맺긴 했지만 '선수들' 연재의 시작이… 맞다. 본토에서도 보기 힘든 분량의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헌사다. 이런 헌사 딴지 아니믄 어디서 디벼 보겠는가. 그러니 본문 뒤에 프롤로그가 붙는 게 뭔 경우냐고 항의들 마시라. 그것도 다 딴지니깐 가능한 것이니.


**팀 웨이크필드(MLB)에 이은 다음 헌액자는 농구나 씨름 선수일 확률이 현재까지는… 높다.


** 명예의 전당 후보들에 대한 독자덜의 다양의 제보를 기다린다. 앞서 말한 자격요건을 갖춘 '선수들'에 대한 의견이나 제보는 종목을 불문하고 ddanzitheplayer@gmail.com으로 보내주시라.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야 말로 반인권적이고 공포스런 딴지의 독촉에서 필자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참.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는 게임(스포츠) 얘기가 아니라 '사랑'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