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8일 일요일

연대의 원조.

족발은 물론이거니와 닭갈비, 순대국, 심지어 옥수수빵 진영에서도 끊임없이 '원조'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 원조전쟁 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조전쟁의 행동대장은 할머니, 이모, 누님등 다름아닌 여성. 그러나 누님이 털보와의 원조전쟁에서 승리한다해도 여성인권의 향상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냥 뭐 그렇다는 거다.




얼마전 백분토론에 나온 희룡형님께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맺어진 총선연대를 두고 참으로 '듣보'스런 연대라 한탄하셨다. 도대체 정당의 강령을 보기나하고 맺은 연대냐,  어디 선량한 국민들을 앞에두고 그런식의 권력 나눠묵기를 대놓고 할수 있느냐. 뭐 이런 의미의 투정이었던 같다. 하긴 새누리당, 그들이 어떤 분들인가. 시대의 연대, 연대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친박연대'라는 원천기술의 보유당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인가. 일찍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연대라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하믄서 정의한 그들이 아니던가.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은 달라요.'라 노래 부르지 마라. 최소한 민주당은 당명바꼈으니 당이 바뀌었다 대놓고 떠벌리진 않는다. 에라이



1990년 1월 22일 오전 10시 청와대, 민정당의 노태우대통령, 민주당의 김영삼총재,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모였다. 독재자이자 군인이었던 노태우, 독재를 반대한 김영삼과의 연대이자 연합이 이뤄진 것이다. 김종필은 독재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던 분이 아니던가. 누군가는 어이없는 야합이라 했고, 누군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계엄이나 강제의하지 않은 민주적인 여야통합이라고도 했다. 각자의 오리지널뤼티가 깨지고, 독재와 민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선과악, 범죄와 정의의 구도가 무너지는 참으로 거침없는 연대, 연합이었던 것이다.

김영삼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영삼이 구하고자 했던 나라가 어느 나라였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렇게 민자당이 탄생했다. 민자당은 신한국당이 되었고, 신한국당은 한나라당이 되었고,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이 되었다.





그러니 왠만한 연대는 성에 차지 않을 터. 이해한다. 그래 니덜이 원조다. 미안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이나 쳐잡고 있어서... 그러니 앞으로 대놓고 큰절같은 거 하지 마라. 나이묵고 그렇게 힘껏 조아리다 잘못하믄 허리나간다.






2015년. 어느 날. 새로운 당명개정을 준비하는 새누리당에선 현역의원과 선배들이 함께하는 '새누리당의 밤'을 개최 했다. 그날 참가한 선배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이 직접 참가했으며, 박정희와 이승만은 실제 사이즈의 전신 사진으로 대신했다. 일부 현역의원들이 군바리 코스프레로 선배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등은 인근 포차에서 열린 '이방인의 밤'에 참석했으며, 그 포차의 이모는 다름아닌 '전여옥'이었다 전해진다. 강용석은 새로운 써바이벌 프로인 '나는 듣보다' 출연으로 인해 그 어느곳에도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명박은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 웃자고 쓴 글이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선거연대는 뭔가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해보인다. 불안해서 웃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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